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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 배달원이 온다면[현장에서/사지원]

입력 | 2019-10-15 03:00:00


사지원 정책사회부 기자

“성범죄자가 고객의 집 주소와 전화번호까지 알 수 있는 배달원이 될 수 있다니요?”

8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의 일부다. 두 아이를 키운다는 작성자는 오토바이를 탄 어느 배달기사를 보고 놀랐다고 전했다. 최근 성범죄자 알림e 고지서에서 봤던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작성자는 성범죄자가 배달기사로 일할 수 없도록 법을 개정해 달라고 청원했다.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배달기사는 성범죄자 취업 제한 직종이 아니다. 앞뒤 가리지 않고 무조건 재범 우려가 높다고 단정 지을 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에 따라 성범죄자는 아동이나 청소년과 접촉할 수 있는 특정 업종에서 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각종 학원이나 체육시설이 대표적이다. 여성가족부는 지방자치단체 등을 통해 연 1회 해당 시설을 점검한다.

하지만 이렇게 법으로 정해 놓은 직종에도 성범죄자가 취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4일 여가부가 자유한국당 신보라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취업 제한 업종에 종사하다가 적발된 성범죄자는 163명에 이른다. 학원 및 과외 업종에 종사하는 인원이 52명(31.9%)으로 가장 많았고, 체육시설 45명(27.6%), PC방 21명(12.9%) 순이었다. 의료기관에서 근무하는 인원도 14명이나 됐다. 2017년(24명)의 약 7배 규모다.

여가부는 “2016년 성범죄자 취업 제한을 규정하는 청소년성보호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을 받으면서 입법 공백이 생겼을 때 취업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헌재는 성범죄자에게 10년간 일률적으로 취업을 제한하는 청소년성보호법 제56조 1항이 “직업선택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한다”며 위헌으로 판단했다. 그 후 2018년 7월 개정안이 시행되기까지의 공백을 말하는 것이다.

입법 공백의 영향도 있지만 느슨한 관리감독 탓도 있다. 여가부는 올해 5월 성범죄자 취업제도 관리를 미흡하게 했다는 이유로 감사원으로부터 주의 처분을 받았다. 점검 대상에 36개 유형의 아동·청소년기관이 있는데 2017년 점검 때 청소년활동기획업소 1개, 청소년활동시설 8개 등 9개 유형에 대한 점검을 누락한 것이다. 또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에 서면으로만 점검을 요청한 뒤 추후 확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실도 있었다.

어느 날 집으로 성범죄자 신상공개 고지서만 날아와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게 부모의 마음이다. 하물며 우리 아이가 다니는 학원이나 태권도장처럼 법으로 취업을 제한한 기관에 성범죄자가 근무할 수 있다면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가부와 관련 부처, 지자체가 더욱 유기적으로 성범죄자 취업 현황을 관리해야 하는 이유다.

사지원 정책사회부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