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
그에 못지않게 즐겨 묻는 것이 바로 어릴 적 장래희망이다. 취미가 타인과의 관계를 여는 지름길이라면 장래희망은 잠시나마 마주 앉은 이의 역사를 들여다보게 하는 앨범이다. “어릴 때 장래희망이 뭐였어?” 물으면 대개는 당황한다. “어릴 때?” 머뭇거리며 내놓는 답변들은 뜻밖인 경우가 많다. “나 대… 대통령이었던 것 같아.” 대통령이 되지 못한 마케터 친구는 서울 강남역 언저리에서 사교육 시장의 부흥을 위해 힘쓰고 있다.
나의 장래희망은 시시각각 변했다. 사물함에 이름과 함께 장래희망을 써 붙이던 시절, 내 꿈은 화가였다. 생일선물로 스케치북을 박스째로 받던 때였다. 그려 봤자 예쁜 옷을 입은 공주나 세일러문 정도였지만 주변에서 그림을 부탁하곤 했으니(심지어는 사가기도 했다!) 자질은 충분한 줄 알았다. 머리가 크면서 화가는 그런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다음은 선생님이었다. 공부를 제법 했고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오면 알려주는 것도 퍽 좋아했다. 그 꿈은 꽤 긴 시간 이어져 ‘좋은 선생님’으로 구체화됐다. 그랬던 어느 날 한 악명 높은 선생님의 말 한마디로 그 꿈은 산산조각 났다. “나도 옛날에는 니들 혼내고 뒤돌아 울고 그랬어!”
누군가는 대통령이었고 누군가는 화가였다. 누군가는 우주비행사였고 과학자, 가수, 심지어 공주였다.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세상을 아는 만큼 꿈의 폭은 좁아졌다. 장래희망은 선택할 수 있거나 선택해 마땅한 ‘직업’의 궤도 안을 맴돌았다. 재고 따지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불가능의 언어를 알게 되면서, 꿈꿀 수 있는 것만 꾸게 됐다.
그러나 박막례 할머니는 70대에 세계적인 유튜버가 됐다. 시바타 도요는 86세에 시를 쓰기 시작해 99세에 첫 시집을 냈다. 결말을 논하기엔 아직 너무 이르지 않을까. 혹시 아는가! 앞서 말한 그 친구가 교육계를 혁신해 먼 훗날 대통령이 될지. 덧붙여 사실, 조금은 자위적일지라도,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장래희망이 여전히 직업과 동의어일지언정 직업과 꿈은 동의어가 아니니까. 직업으로 정의되지 않는 꿈도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니까. 예전엔 되고 싶은 게 많았다면 지금은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무언가가 되든 되지 않든, 오늘 나의 꿈은 지금 이곳에 분명히 실재한다.
김지영 원스토어 웹소설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