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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에 익숙한 고래 세대에게[이재국의 우당탕탕]〈27〉

입력 | 2019-10-15 03:00:00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고등학교 3학년 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몰래 도망쳐 당구장에 갔다 왔는데 담임선생님께 걸리고 말았다. 선생님은 교탁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더니 손바닥 3대를 때리셨다. 어느 날에는 2교시가 끝나고 배가 너무 고파 도시락을 까먹다가 걸려서 또 손바닥 3대를 맞았다. 지금은 손바닥 한 대라도 때리는 선생님이 거의 안 계시겠지만, 그 시절에는 크게 잘못한 것도 아닌데 엎드려뻗쳐 하고, 종아리 맞고, 허벅지 맞고, 몽둥이가 부러질 정도로 때리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늘 일정한 강도, 솔직히 하나도 안 아프게 손바닥을 때리셨고, 큰 잘못이나 작은 잘못이나 모두 똑같이 손바닥 3대만 때리셨다. 처음에는 너무 좋았다. 안 아프니까. 다른 선생님 같았으면 화풀이 하듯 몽둥이로 세게 때리셨을 텐데, 우리 선생님은 ‘너의 죄를 사하노라’ 하시듯 아주 천천히 손바닥 3대가 끝이었으니 아이들은 실수를 해도 별로 두려움이 없었고, 손바닥 3대는 기꺼이 맞아 줄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 한 녀석이 일주일 가출을 했고, 그 녀석 때문에 선생님이 속을 끓이셨을 텐데, 그때도 선생님은 그 녀석의 손바닥을 딱 3대만 때리셨다. 평소 장난꾸러기에, 진짜 말 안 듣던 그 녀석이 손바닥 3대에 눈물을 흘렸고, 반 아이들도 고개 숙이고 다같이 숙연해졌다. 세게 때린 것도 아닌데, 그날 선생님의 손바닥 3대는 맞는 사람도 아팠고, 보는 사람도 아팠다.

그날 이후 반 분위기가 확 달라졌고 다들 철든 것처럼 떠드는 아이들도 없어졌다. 졸업식 날 선생님은 우리 반 친구들을 진심으로 한 명씩 안아주셨고, 우리는 헹가래를 해드렸다. 졸업하고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지금도 친구들은 스승의 날 무렵이면 그 선생님을 찾아뵙는다.

우리는 그렇게 선생님께 혼나고, 선배에게 혼나고 자랐는데 요즘 세대는 혼나는 것보다는 칭찬에 익숙한 세대다. 귀한 가정에서 귀하게 자란 이유도 있겠지만 2000년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더더욱 칭찬을 아끼지 않은 덕분이다. 아이들이 혹여 잘못을 해도 “내 아이는 나만 혼낼 수 있다”는 부모의 이기적인 마음 때문에 선생님도 혼낼 수가 없고, 집안의 다른 어른도 혼낼 수가 없다 보니, 오로지 칭찬범벅으로 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칭찬고래 세대로 자라다 보니 사회생활을 하면서 누군가에게 혼나거나, 지적을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그래서 혼나면서 자란 세대와 칭찬만 받고 자란 세대가 어쩌면 소통이 잘 안 되는지도 모르겠다.

파도의 높이가 항상 일정하다면 항해하는 법은 배울 필요가 없다. 특별한 노하우도 없을 것이고 큰 사고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 그런데 파도의 높이가 일정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 인생의 파도도 절대 일정하지 않다. 거친 파도를 만났을 때 칭찬도 도움이 되겠지만 칭찬만으로 거친 파도를 넘을 수는 없다. 어쩌면 칭찬은 거친 파도를 잘 이겨낸 후에 받아도 늦지 않다. 그러니 혼나는 것에 너무 짜증내거나 두려워하지 마시길.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