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백미는 산나무와 들꽃이 심긴 자그마한 뒤뜰이다. 혜곡 최순우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결코 큰 덩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뜰 앞 잔가지에 구슬진 영롱한 아침 이슬, 차분히 비에 젖은 낙엽, 서리 찬 겨울 달밤 빈 숲 잔가지에 쏟아지는 달빛의 미를 갈피갈피 느끼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즐거움”이라고 썼다.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최순우 옛집’의 툇마루에서 바라본 뒤뜰엔 가을색이 완연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으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1914∼1984·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작고하실 때까지 돌과 나무를 가꾸며 살았던 운치 있는 한옥이다.
오래된 노송과 향나무, 우물이 있는 혜곡 최순우기념관의 앞마당. 김재경 사진작가 제공
사방탁자, 문갑 등 선비들이 쓰던 목가구가 놓여있는 혜곡의 방.
실제로 뒤뜰 가득히 노랗게 물들이는 들국화는 1960년대 초반 최 선생이 전남 강진에서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굴할 때 길가에서 한두 그루 캐온 것이 퍼진 것이라고 한다. 매화나무는 1979년 도예가 노경조 씨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 인사차 들렀을 때 최 선생과 함께 종로 화훼시장에서 사서 심은 것이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에도 사연이 가득하다.
서울 성북구 성북동 자택에 있는 혜곡 최순우 선생의 생전 모습. 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제공
이 집은 선생의 사후에 매각돼 빌라로 재건축될 위기에 처했었다. 그러나 2004년 4월 시민들과 지인들이 모금 운동을 통해 내셔널트러스트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우리나라 최초의 ‘시민문화유산 1호’로 일반에 공개했다. 이 집에는 요즘 툇마루에 앉아 조용히 가을을 즐기고 가는 시민들이 많다. 9일에는 뒤뜰에서 리코더 연주로 ‘음악이 꽃피는 한옥’ 콘서트가 열렸고, 안채와 사랑채에서는 11월 16일까지 김종학 화백 수집가구 전시회가 열린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