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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림받은 조커가 만든 환상, 결국은 망상

입력 | 2019-10-16 03:00:00

[홍은심 기자의 낯선 바람]망상장애



“정신질환의 가장 나쁜 점은 사람들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 ‘조커’ 대사 중. 사진=영화 ‘조커’ 스틸 이미지.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제공


영화 ‘조커’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코미디언 아서 플렉에 대한 이야기다. 어린 시절 아서는 아동학대를 당한다. 동거남의 폭력과 엄마의 방임. 방임은 아이에게 ‘세상에서 완전히 너 혼자’라는 끔찍한 절망감을 안겨준다. 하지만 아서는 해리성 기억상실로 어린 시절 학대를 기억하지 못하고 엄마를 극진히 돌본다. 이는 어쩜 엄마가 없다면 혼자가 된다는 지독한 공포 때문일지도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아도 몸이 기억하는 공포.

어린 시절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서는 성인이 돼서 사회에서도 버려진다. 직장에서 해고되고 그가 다니던 복지센터의 상담사는 “오늘이 마지막”이라며 그를 보낸다.

그의 인생을 휘감고 있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열등감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 아서는 자신의 열등감과 피해 의식을 보상받을 만한 환상을 만들어 낸다. 머레이 프랭클린 퀴즈쇼에서 갈채를 받는 자신을 꿈꾸고 같은 층에 사는 여성과 연인 관계라는 망상에 빠진다.

망상장애는 고립된 사람들에게서 생긴다. 망상장애를 겪기 시작할 때 주변에 이를 바로잡아줄 사람이 없다면 잘못된 신념은 점점 확고한 사실이 돼간다.

망상은 잘못된 믿음이다. 그 믿음은 사실과 다르고 설득되지도 않는다. 그의 사회, 문화적인 배경과도 어울리지 않는다. 아서와 같은 과대망상은 자신을 유명인이나 강력한 힘과 관련이 있다고 믿는 것이다. 유명 정치인이나 재력가의 숨겨진 자식이라고 믿거나 더 나아가서 초자연적인 존재나 신이라고 믿기도 한다.

그들은 망상의 내용이 전적으로 옳다는 확신을 가지는데 그 정도가 절대적이라고 할 만큼 강해서 다른 사람이 망상이 잘못을 지적하면 불같이 화를 내거나 아예 마음을 닫아버리기도 한다. 망상이 그에게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짐작하게 한다.

망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다양하다. 아서는 엄마의 망상이 전염됐을 가능성도 있다. 아서의 엄마는 토머스 웨인과 연인 관계였다는 망상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누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망상을 가지는 것을 ‘색정형’ 망상이라고 한다. 자식이 부모의 정신질환을 공유하는 건 둘 사이의 애착 관계가 과도할 때 일어난다. 보통 부모와 같은 우월한 사람에게서 먼저 망상이 나타나고 취약한 자녀에게 그 망상이 전염될 수 있다.

망상은 매우 심각한 병적 증상이지만 그 나름대로 삶에 있어서 중대한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너무나 취약하고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비참한 삶을 살아가던 사람에게 발생한 과대망상은 그의 태도를 송두리째 바꿔놓고 희망과 확신을 준다. 그러나 그것은 현실과 전혀 달라 긍정적으로 작용하기보다 대부분 부정적이고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

홍은심 기자 hongeunsim@donga.com


▼ 약물치료보다 중요한 건 ‘공감’ ▼

망상장애는 치료가 매우 어렵다. 환자가 자신이 믿는 ‘거짓된 사실’에 확신을 가지기 때문이다. 망상을 치료하려면 우선 망상을 일으킨 원인을 알아내고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현재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은 약물치료다. 종종 정신건강의학과 약물치료에 대해서 부정적인 선입견을 갖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정신과에서 사용하는 약물은 부작용을 최소화한 매우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급성기에는 현실과 망상을 구분하는 능력이 약해져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특히 중증의 정신질환의 경우에는 스스로 치료를 받겠다고 나서기 어려울 때가 많다. 망상을 논리적으로 설득하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여러 가지 증거와 논리를 나열하며 환자를 설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다. 또 약물치료보다 우선 중요한 것은 망상을 가진 환자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하는 것이다.

정찬승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융학파 분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