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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깜깜이’ 평양 축구, 2년간 남북관계 공들인 대가가 이건가

입력 | 2019-10-16 00:00:00


우리 국민은 어제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월드컵 아시아예선 남북 축구경기 소식을 간간이 전해지는 단편적 뉴스로만 접할 수 있었다. 평양에 간 남측 관계자가 경기 상황을 단문 메시지로 전해오면 다시 언론에 전달하는 ‘전언 통신’이었다. 1990년 남북 통일축구 이후 29년 만에 열린 남자 축구경기에 국민의 관심은 평양에 쏠렸지만, 깜깜이 무(無)관중 경기를 몇 단계나 거쳐 전해 들어야 했다. 19세기식 전보(電報)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한은 이번에 생중계는 물론이고 남측 취재진이나 응원단의 방북도 허용하지 않았다. 북한은 그간 우리 정부와 대한축구협회, 아시아축구연맹의 협조 요청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북한축구협회는 ‘우리 권한 밖으로 당국이 협의할 사안’이라고만 했다. 정권 수뇌부가 결정할 정치적 사안이라는 얘기다. 우리 선수들은 관중석이 텅 빈 경기장에서 외부와 차단된 채 뛰어야 했다. 영국 BBC는 “이전에 본 적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특이한 축구 더비”라고 했다.

북한축구협회는 그제 우리 지상파 3사의 대리인을 통한 막판 협상에서도 무리한 요구를 하며 끝내 중계를 무산시켰다. 1990년 통일축구 때만 해도 4시간 지연된 녹화중계가 이뤄졌지만 이번엔 그마저 불가능했다. 과거 라디오로 축구 중계를 듣던 시절보다 답답한 상황이 된 것이다. 북한은 경기 실황을 담은 DVD를 귀국길의 우리 대표단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지만 방송 가능한 내용인지 받아봐야 알 수 있고, 대표단은 내일 새벽에나 귀국한다.

북한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곤 스포츠 생중계를 하지 않고 자신들이 이긴 경기 위주로 선별해 녹화방송을 한다. 월드컵 1, 2차 예선 중계권은 홈팀에 있는 만큼 북한은 자신들의 관례대로 할 뿐이라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토록 ‘우리 민족끼리’를 외쳐온 북한이다. 화해무드가 무르익던 지난해만 됐어도 이렇게 막무가내 비협조로 일관했을까.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식의 북한 행태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지난 2년여간 남북관계를 국정 최우선순위에 두고 들여온 공을 생각하면 최근 북한의 태도는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의 어깃장이다. 그동안 정부가 북한의 도발과 막말, 안하무인에도 인내심을 발휘했지만 결과적으론 북한 버릇만 더욱 고약하게 만들었음이 드러났다. 북한 정권이 정상국가답게 행동하도록 이끌 방법을 근본적으로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