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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예약 해주고 문화강좌 개설… 은행들 “큰손 은퇴자 모셔라”

입력 | 2019-10-16 03:00:00

시니어 특화 서비스 앞다퉈 도입… 65세이상 예금 잔고 125조 달해
전체의 21%… 5년만에 33% 증가, 지방銀은 특화지점 속속 늘려



KEB하나은행이 최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컬처뱅크에서 마련한 ‘직장인 노후 준비하기’ 강좌. 은행 고객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이 모여 노후 컨설팅을 받았다. KEB하나은행 제공


경기 수원에 사는 윤모 씨(46)는 손에 관절염이 생겨 치료받을 대학병원을 수소문하다 지난달 헬스케어 전문업체에서 종합병원 의료진 3명을 소개받았다. 윤 씨는 이들에게서 관절염을 완화하기 위한 생활습관과 치료방법을 안내받았다. 윤 씨와 헬스케어 업체를 연결한 곳은 다름 아닌 신협중앙회였다. 신협은 5월부터 ‘어부바효예탁금’ 가입자와 공제 계약자에게 건강상담, 진료예약 등 의료지원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금융회사가 고객의 ‘의료 코디네이터’가 된 셈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병원예약을 대행해주고 은퇴자들의 모임공간을 무료로 제공하는 등 ‘시니어 맞춤형 서비스’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대부분 해당 은행 고객에 한정하지 않고 은퇴자들에게 대상을 폭넓게 열어둔 점이 특징이다. 저금리에 수익을 내기 힘든 금융회사들에 자산을 축적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 세대는 잠재적인 ‘큰손’ 고객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 은퇴자 모임 공간 제공하는 은행


우리은행은 올해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중구 명동에 시니어 모임 공간 ‘우리시니어플러스센터’를 신설했다. 이 공간은 우리은행 고객이 아니어도 은퇴자라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정인호 우리은행 차장은 “시니어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올해 1월 시니어마케팅팀이 출범됐다”며 “재테크뿐 아니라 건강, 여가 등이 조화를 이뤄야 건강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비금융 분야 서비스를 지원해 잠재 고객을 만나고 있다”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은 백화점처럼 일종의 문화센터 강좌를 열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단지 주민들을 대상으로 인근 영업점에서 ‘가드닝(정원 가꾸기)’ 수업을 했다. 은퇴자, 주부들은 삼삼오오 모여 가드닝 실습을 하고 덤으로 부동산 정보도 챙겨갔다. 강북구의 한 지점에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디퓨저 만들기’ 강좌도 열렸다.

이재중 하나은행 팀장은 “은퇴자들에게 금융서비스만 안내하면 영업활동처럼 보이고 거부감이 생길 수 있어 다양한 문화행사를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도 시니어를 대상으로 ‘KB골든라이프’ 서비스를 마련했다. 고객을 은퇴준비시기, 은퇴시기, 은퇴 후 시기로 나눠 생애주기에 따라 노후설계 세미나를 열고 있다. 이 은행은 고객들의 치매에 대비해 성년후견제도와 같은 법률지식을 물을 전문가도 연결해준다.

○ 비대면 시대, 영업점 창구에 더 공들이기도

은행들이 단순히 은퇴자들에게 자산관리 상담을 하는 차원을 넘어 노후 컨설턴트 역할을 하고 나선 것은 이들이 금융권의 ‘큰손’으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가 보유한 은행 예금 잔액은 2017년 말 기준 125조5000억 원으로 전체 은행 예금의 20.8%를 차지했다. 고령자의 예금 잔액은 2012년 말 94조1000억 원에 불과했지만 5년 만에 33.4%가 늘었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최근 부동산 경기가 안 좋아지면서 은행 영업점을 찾는 은퇴자들이 늘어 은행들의 시니어 서비스 경쟁도 활발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령화가 유독 진전된 지방의 은행들은 아예 ‘시니어 은행’임을 자처하고 있다. 디지털 뱅킹 시대에 오히려 오프라인 영업점 서비스에 더욱 공들이는 추세다. BNK부산은행은 지난달 ‘시니어 고객을 위한 행복한 금융 선포식’을 열고 시니어 특화 영업점 10곳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영업점에서 고령자만 밀착 수행하며 기기 이용법을 설명하는 ‘시니어 서포터스’도 따로 채용해 눈길을 끌었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