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등의 윤 총경 부실 수사 관여 여부 밝히고, 검찰 개혁 이후 경찰 수사 중립성 확보 고민할 때
정원수 사회부장
“같은 식구끼리 백날 152명이 한들, 1만5000명이 한들… 경찰에 대한 신뢰를 뚝 떨어뜨렸습니다.”
14일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열린 국회의 국정감사. 검찰 개혁을 놓고 딴소리를 하던 여야 의원이 한목소리로 경찰을 성토했다. 올 3월 14일 민갑룡 경찰청장이 국회에서 “경찰의 명운이 걸렸다는 자세로 임하겠다”고 약속했던 서울 강남 클럽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사건 수사 때문이다.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5개월 넘게 수사하고도 경찰이 내부에 온정적이었다는 비판은 이 사건의 진실 일부분에 불과하다. 살아있는 권력 수사에 약한 경찰의 한계가 본질에 더 가깝다.
버닝썬 사건의 핵심 수사 대상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인 2017년 7월부터 1년 동안 대통령민정수석실에서 파견 근무했던 윤규근 총경(49·수감 중)이다. 경찰청 정보국에서 ‘청와대 보고용 특별보고서’ 등을 만들던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민정수석실에 처음 발탁됐고, 그 인연으로 문 정부 때 두 번째 청와대 근무 기회까지 얻었다.
반면 검찰은 올 6월 경찰의 수사 기록을 넘겨받고 약 한 달 뒤부터 큐브스의 경기 파주시 본사와 서울사무소, 윤 총경의 자택 등을 연이어 압수수색했고, 여기서 윤 총경이 공짜로 받은 비상장 주식에 대한 파일을 찾아냈다. 잠적했던 정 전 대표까지 체포한 검찰은 윤 총경이 공짜 주식을 정 전 대표가 2016년 경찰에 고발된 사건을 무마해주는 대가로 받았다는 진술을 확보한 뒤 윤 총경을 구속 수감했다.
더 납득하기 어려운 건 경찰이 올 3월 윤 총경이 임의 제출한 휴대전화에서 보안성이 높은 텔레그램 메시지 내용을 파악하고도 모른 척한 이유다. 민 청장은 버닝썬 발언을 하던 날 국회에서 “별장 동영상 속 인물이 김학의 전 차관이라는 것은 육안으로 봐도 확실하다”면서 검찰의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했다. 윤 총경은 민 청장의 이 발언 기사 링크를 대통령민정수석실 관계자에게 보내며 “이 정도면 됐나요?”라고 물었다. 이 관계자는 “검찰과 대립하는 구도를 진작에 만들었어야 하는데”라고 답했다. 자신이 연루된 버닝썬 사건을 덮기 위해 윤 총경이 청와대까지 끌어들여 김 전 차관 사건을 키우려고 했던 정황인데, 경찰은 그냥 넘긴다.
민 청장의 국회 발언 하루 전 윤 총경은 같은 달 26일 자신과 민 청장 등이 청와대 비서관과 만나는 저녁 약속을 잡는다. 비록 약속이 취소되긴 했지만 윤 총경의 이런 위세에 경찰 수사팀이 눌렸던 것은 아닐까 짐작될 정도로 경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한다.
비대한 검찰 권한을 쪼개는 검찰 개혁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그 첫 수혜는 경찰이 받게 된다. 하지만 권력에 굽실했던 경찰이 제2, 3의 윤 총경 사건을 양산할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검찰이 경찰 지휘부와 청와대의 윤 총경 부실 수사 관여 여부를 낱낱이 밝히되, 정치권도 검찰 개혁 이후 경찰 수사의 중립성을 보장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정원수 사회부장 need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