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암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미국에 온 지 20년이 갓 넘었을 때였다. 그녀는 이제 스무 살이 훌쩍 넘은 아들이 부엌에서 쌀을 씻는 모습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때 너를 그곳에 보내지 말았어야 했는데 내가 큰 실수를 했다.” 아직도 옛날 일이 한스러운 모양이었다. 이렇게 일찍 죽을 줄 알았더라면 어린 아들을 멀리 떨어진 기숙학교에 넣고 애태우진 않았을 텐데.
그녀는 고통이 심해져 점점 더 진통제에 의존하게 되었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스물다섯이나 된 아들을, 자신이 오래전 어느 9월 오후 기숙학교에 내려놓고 온 열다섯 살짜리 아들과 혼동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녀는 아들과 헤어졌던 일이 트라우마였던지 자꾸 옛날로 돌아가다가 결국 쉰두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아들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에게서 자신이 기숙학교에 들어가던 날 어머니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 듣게 되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돌아가면서 두 시간 이상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창백했다. 그러다 결국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갓길에 차를 세우고 같이 울었다. 그녀는 아들과 헤어지는 게 그토록 힘든 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게 분명했다. 그녀는 자식을 삶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여느 한국인 어머니와 다르지 않았다. 낯설고 물설고 말도 선 타국에 살아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그는 어머니가 생각날 때면 차를 몰고 혼자서 고속도로를 달린다. 그리고 갓길에 세워진 차 안에서 자기를 생각하며 울었을 ‘엄마’의 모습을 상상한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