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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 방역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동아 시론/조호성]

입력 | 2019-10-16 03:00:00

아프리카돼지열병… 새로운 ‘전쟁’
큰 로드맵 그리는 장기 대책 필요… 연구력 결집해 백신 개발에도 나서야
이 전쟁은 가축 전염병과의 싸움이자 우리 식량 주권을 지켜내는 일



조호성 전북대 수의과대 교수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돼지열병이라는 새로운 가축 전염병과 ‘전쟁’을 치르고 있다. 9월 17일 경기도 파주를 시작으로 연천, 김포, 인천 강화의 돼지에서 발생한 이후 연천의 비무장지대, 연천과 강원도 철원의 민통선 내에서 멧돼지 사체가 발견되었고 아프리카돼지열병으로 확진되었다. 이번 농림축산식품부의 방역대책은 신속하고 단호했다. 처음 방역당국의 차단 절차는 절차 이상의 과도한 실행으로 방역 의지를 드러냈고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남쪽으로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강화군의 경우 전체 돼지를 도살 처분하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그 결과 이 질병의 발생 지역을 경기도 서북부에 묶어 두는 성과를 얻었다. 이번 대응 과정에서 농식품부를 중심으로 방역당국이 미리 이 질병을 예상하고 대비했지만 처음 만나는 질병에 대응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구제역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은 질병임을 알게 되었다. 첫째, 바이러스 유입 경로는 과학적인 추론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 어느 하나도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둘째, 예상과 다른 임상 증상 발현과 전파 양식이었다. 우리는 돼지가 고열에 식욕이 없으며 피부 청색증과 구토 등이 나타나는 것을 주요 증상으로 예상했지만 국내 감염 돼지는 이런 증상이 잘 나타나지 않았거나 찾아내기 어려웠다. 이 때문에 발생하는 신고 지연은 방역에 큰 장애물이 되었다. 셋째, 강력한 전파 매개체인 멧돼지에 대한 초기 조치가 충분하지 못했던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이 부분에서 농식품부와 환경부, 국방부와의 협조가 원활하지 못했으며 상황을 바라보는 관점에 온도 차가 있었다. 다만, 최근 멧돼지 감염 개체의 확보 및 조절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공동 대응해 나가는 모습은 희망적인 일이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숙제를 주고 있다. 세계 어느 누구도 만들지 못한 아프리카돼지열병 백신 개발이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의 연구력을 결집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다만 이전의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때처럼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산발적인 연구보다는 큰 로드맵을 그려놓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장기적인 시각이 필요한 때다. 차단방역 방법에도 개선이 필요하다. 질병을 차단하는 데 있어 아프리카돼지열병은 구제역과 달리 신속한 대응이 아니라 ‘섬세한’ 대응이 중요한 질병이다. 양성 돼지를 찾아내기 위한 모니터링 방법도 질병 확산 양상에 따른 새로운 방법의 적용이 필요해졌다.

한편 농장에서의 차단방역 노력에 대한 점검도 필요하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발생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농장 내로 바이러스가 들어와 돼지와 만나게 되면 발생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문제가 되고 있는 농장 내로 차량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 일, 축사 내 전용 장화로 갈아 신는 일, 손을 잘 씻는 일, 폐사체를 잘 처리하는 일, 소독은 효율적으로 잘하고 있는지 평가해보는 일 등은 매우 중요한 일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농장이 차단방역을 잘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예, 아니요’의 답이 아니라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수를 매겨보는 것이 중요해진 시점이다. 일반 국민도 해야 할 역할이 있다. 농장에는 출입하지 않아야 하며 여행 시 해외에서 불법 축산품을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한다. 또 죽은 야생 멧돼지를 발견하는 경우 신고하는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조만간 이 질병 상황이 정리되면 질병 재발에 대한 대책도 점검해야 하고 재입식에 대한 논의도 있어야 한다. 이번 사태가 가축 질병 방역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방역당국이 준비하고 적용 시기를 기다려왔던 가축 질병 위험도 평가를 기반으로 한 농장과 지역 단위의 차단방역 및 질병관리등급제 등을 현실화해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가축 전염병 차단방역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때가 되었다.

앞으로 또 다른 가축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질병이든 농장 스스로가 차단방역의 주체로서 방역당국의 지원과 국민의 적극적인 관심이 수반된다면 어떠한 가축 전염병도 이겨낼 수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가축 전염병이어서가 아니다. 우리의 식량 주권을 지켜내는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 질병에 관심을 갖고 전 국민이 동참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조호성 전북대 수의과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