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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코앞인데… 엉터리 EBS 점자교재 펴보다 한숨

입력 | 2019-10-16 03:00:00

영어-수학교재 점자 번역 오류, 시각장애 수험생 “무슨 말인지…”
7월 수정본 냈지만 일부 여전




‘여믈애와 ! 역얼 목얾얼.’

올해 고교 3학년인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사용하는 EBS 수능특강 영어영역 교재에는 점자로 이런 구절이 적혀 있다. 이 구절은 원래 영어 ‘whether와 to what extent’에 해당하는 점자가 표기돼 있어야 한다. 점자가 정체불명의 ‘외계어’처럼 읽히는 이유는 점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겼기 때문이다. 컴퓨터로 문서 작업을 하면서 한글에서 영문으로 또는 영문에서 한글로 변환할 때 ‘한/영’ 키보드를 누르듯이 점자에서도 언어가 중간에 바뀐다는 것을 표시해 줘야 하는데 이런 과정이 생략됐기 때문에 오류가 생긴 것이다.

이 같은 엉터리 교재가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준비하는 시각장애인 수험생들을 울리고 있다. 교재를 점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겨 해석이 불가능한 문장이나 수식이 적혀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올해도 EBS 교재·강의의 수능 연계율은 70%에 달한다. 시각장애인용 EBS 수능특강 국어영역 교재에는 일반 교재에 그려져 있는 도식이 빠져 있고 대신 그 자리에 ‘그림 설명’이라는 점자만 적혀 있다.

교재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이주희 양(18)은 “표나 도형이 자주 나오는 교재에 오류가 많다”며 “도형 점자를 접할 기회가 없어 올해 9월 모의고사 문제에 도형이 나왔을 때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시각장애인용 EBS 교재는 교육부 소속 기관인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제작과 배포를 맡는다. 특수교육원은 오류에 대한 민원이 이어지자 올해 7월 시각장애인용 EBS 수능특강 교재를 전부 재검토한 뒤 수정본을 배포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미 잘못된 교재로 오랫동안 공부해 왔다. 수능이 한 달가량 남은 지금도 수정되지 않은 오류들이 남아있다.

특수교육원 관계자는 “올해 점자 번역을 맡은 업체가 관련 업무 경험이 많지 않아 오류가 더 많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장애인용 학습자료 제작 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수교육원에서 점자 교재를 만드는 데는 수개월이 걸리는데, 출판사들이 점자 교재 제작에 필요한 원본 파일을 2주 전에 넘겨주는 경우도 많아 시간에 쫓기며 작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특수교육원 내에 점자 관련 전문 인력이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연주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정책팀장은 “전문성을 갖춘 장애인용 학습자료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며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엉터리 교재는 계속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