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축구 無관중-無중계 경기 예전엔 관중 동원해 일방적 응원… 이번엔 패배 예상해 접었을수도 FIFA에 ‘공정 경기’ 강조 효과도… 野“깜깜이 축구, 대북정책 현주소”
평양 도착한 FIFA 회장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가운데)이 15일 평양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귀빈실을 나서고 있다. 인판티노 회장은 이날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의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을 관전하기 위해 북한을 찾았다. 오른쪽은 마중을 나온 김장산 북한축구협회 사무총장. 평양=AP 뉴시스
5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북한 축구의 성지’ 평양 김일성경기장에는 뜻밖의 정적이 흘렀다. 북한이 안방경기를 치르면 귀가 먹먹할 정도의 짝짜기 소리와 “본때를 보여라”는 팬들의 함성이 가득한 곳이었지만 15일 한국과 북한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에서는 텅 빈 관중석을 배경으로 선수들의 거친 숨소리와 심판의 휘슬 소리만 가득했다.
2년 전 한국과 북한의 여자 축구 경기(1-1 무)가 이곳에서 열렸을 때는 경기 시작 2시간 전부터 북과 장구를 든 응원단이 끊임없이 경기장에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날 킥오프 30분 전인 오후 5시 아시아축구연맹(AFC) 경기감독관이 대한축구협회에 전달한 경기장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경기장에 관중이 없다. 외신 기자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짧은 시간에 일사불란하게 관중을 입장시킬 것이라는 예상도 있었다. 14년째 김일성경기장에서 남자 축구 무패 행진(10승 2무)을 이어온 동력인 자국 관중의 응원을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 전날 저녁 양 팀 매니저 미팅 때만 해도 관중 4만 명이 찾을 것으로 예상됐었다. 하지만 경기장에 태극기가 게양되고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도 관중은 보이지 않았다. 킥오프와 동시에 AFC 감독관은 “무관중으로 경기를 시작한다”고 알려왔다.
북한의 결정을 놓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외화벌이를 위해 외국인 관광을 장려하고 있는 북한은 여행사들이 예약을 받았던 외국인 관광객의 경기 관람도 차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축구계 관계자는 “2년 전 여자 축구는 북한(FIFA 랭킹 9위)이 한국(20위)보다 우위에 있다 보니 승리를 예상해 관중을 동원했다. 하지만 남자는 한국(37위)이 북한(113위)보다 전력이 월등히 높아 자국 관중에게 패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무관중을 결정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이날 이례적으로 경기장을 찾은 만큼 무관중 경기를 통해 “일방적 응원 없이 경기가 공정하게 치러졌다”는 걸 강조한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한 한국을 향한 불만 메시지를 쏟아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 대북 전문가는 “한국 대표단이 평양까지 왔지만 관중을 아예 빼버리면서 당장 남북 교류 같은 것에는 흥미가 없다는 뜻을 전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대한축구협회는 “AFC와 북한 측이 사전 조율을 한 사항은 아니다. 입장권 판매 등 안방경기 마케팅 권리는 주최국 축구협회가 가지고 있으므로 AFC에서 문제 삼을 이유는 없다”고 밝혔다. 무관중 경기가 징계 사유는 안 된다는 의미였다.
야당은 무중계, 무관중, 무승부로 끝난 이날 남북 대결을 두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민주평화당 박주현 수석대변인은 “세계가 주목했지만 ‘깜깜이’ 남북 더비가 됐다는 점에서 북한의 폐쇄적이고 안하무인적 태도를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어 “‘깜깜이 경기’만은 막아야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남북 당국 모두) 무능하고 무례했다”고 지적했다.
정윤철 trigger@donga.com·황인찬·신나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