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영자총협회가 지난달 정부가 입법예고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전면 철회해 달라는 의견을 정부에 어제 제출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단순투자 목적으로 5% 이상 지분을 가진 주주가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매우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그런데 시행령 개정안은 공적 연기금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 변경을 추진하는 경우는 ‘경영에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닌 것으로 분류했다. 또한 회사나 임원이 위법행위를 했을 경우 연기금이 이에 대응하는 행위도 경영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고 규정했다.
이럴 경우 국민연금이 단순투자 목적의 주주이면서도 얼마든지 경영에 간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국민연금의 이른바 스튜어드십코드를 강화해 대기업 총수의 전횡을 견제하겠다는 견해를 피력해왔고 이번 시행령 개정도 그 일환이다. 국민연금은 630조 원을 굴리면서 국내 증시에만 130조 원 가까이 투자하는 국내 최대 투자자다. 국민연금이 단순투자 목적으로 5% 이상 보유한 상장사만 300개에 가깝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전에 비해 훨씬 용이하게 기업 경영에 개입할 수 있게 된다.
개정안에는 상식에 어긋나는 조항들이 많다. 지배구조 개선 같은 주요 사안과 관련된 의사결정이 경영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내용은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국민연금의 금융당국 보고 의무를 약화시킨 것도 세계적 추세와 맞지 않다.
국민연금은 돈을 불려 노후자금으로 돌려 달라고 운용을 맡겨놓은 것이지 이를 이용해 정권이 자신의 성향에 맞지 않는 기업을 혼내주라는 용도가 아니다. 그럴 의도 없이 오로지 연금의 장기적 수익만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먼저 국민연금의 지배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공적연금이 주식의결권을 갖고 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7개국 가운데 대통령이 임명하는 장관이 공적연금의 최고의사결정기구 수장을 맡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국회 논의 절차가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 추진도 꼼수다. 전면적인 재고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