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교류’ 사전 타진때 北 무응답 정부, 無중계 미리 알고도 대응못해… ‘無관중’도 경기 30분 전에야 알아 통일부 “체육교류 아닌 국제경기… 남북관계 연관 부적절” 해명 논란
15일 관중석이 텅 빈 가운데 평양 김일성경기장에서 열린 한국과 북한 대표팀의 축구경기. 대한축구협회 제공
29년 만에 평양에서 열린 남북 축구가 ‘무관중, 무중계’로 끝나면서 경색된 남북 관계의 민낯이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북-미가 비핵화 대화에서 한국을 공개적으로 ‘패싱’시키는 데 이어 북한이 국제 체육 행사에서 노골적으로 한국을 홀대하면서, 문재인 정부가 최소한의 대북 레버리지를 잃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청와대는 평양에서 15일 열린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 경기의 생중계가 무산된 것에 대해 “저희도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그러지 못한 데 대해 똑같이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16일 기자들과 만나 “평창 겨울올림픽이 스포츠를 통해 평화의 물꼬를 튼 것처럼 스포츠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국민들도 많이 기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7월 17일 조 추첨에서 북한과 함께 H조에 배정된 후 월드컵 남북 경기를 관계 개선의 디딤돌로 삼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고 한다. 그러나 북한은 정부의 이런 노력에 무반응으로 일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소식통은 “평창 때와는 달리 북한은 내내 무응답이었다고 보면 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축구협회 관계자는 “통일부는 상식 수준에서, 제소하는 절차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 것 같다”고 했다. 통일부가 축구협회에 책임을 미뤘으나 무중계 무관중은 북한 당국의 결정인 만큼 협회는 별다른 항의 수단을 갖고 있지 않다는 얘기다. 실제로 2차 예선의 경우 중계와 응원 등 경기 제반 사안에 대한 결정은 개최국에 있기에 북한이 규정을 위반했다고 보기엔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정부는 무중계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무관중 경기로 진행될 것이라는 점은 경기 시작 30분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 북한은 “경기장에서 인터넷이 사용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막상 현장에선 사용이 불가능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평양 현지의 상황을 도착 이후에나 우리 측에 알려주는 게 습관화돼 있다. 남북의 월드컵 경기도 그런 깜깜이 상황에서 치러졌다”고 했다.
정부는 이번 경기가 남북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통일부 이상민 대변인은 “(이번 경기는 월드컵) 예선 그 자체로, 기존의 어떤 남북 합의에 의한 체육 교류로서 진행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앞으로의 남북 관계와 직접적으로 연관해서 말씀드리기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국제 경기인 월드컵과 남북 간 합의에 의한 체육 교류는 ‘별개’로 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 내에서조차 “지난해 평창 겨울올림픽을 통해 남북 관계가 진전됐다고 홍보했던 것은 뭐가 되냐”란 반론이 나오고 있다. 또 다른 외교 소식통은 “청와대 국가안보실, 국가정보원 등 대북 라인 역량에 전반적으로 적신호가 켜진 것 아니냐”고 말하기도 했다.
황인찬 기자 hi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