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존중사회-지속성장 위해선 노사가 책임감과 절박함 가져야
신연수 논설위원
유럽에서 발달한 ‘사회적 대화’는 경제 사회의 다양한 과제들을 노사정(勞使政)이 협의해 풀어나가는 방식이다. 대표적인 기구가 김대중 정부 때 처음 만들어져 외환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던 노사정위원회, 지금의 경사노위이고 최저임금위원회도 노사정이 함께 논의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사회적 대화기구다.
정부가 사회적 대화를 중시하는 것은 사회의 여러 과제를 정부 독단으로 끌고 가지 않고 사용자와 노동자를 정책 파트너로 여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실제로 현재 한국이 맞닥뜨린 과제들은 디지털화 및 개발도상국들의 추격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 비정규직과 정규직을 비롯한 사회 양극화, 청년 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 한두 개의 정책으로 풀 수 없는 복합 위기들이다. 한국 사회가 국제 경쟁력을 가지면서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해 당사자와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자단체들은 요구가 관철되지 않을 경우 걸핏하면 대화에서 빠지고 장외 투쟁으로 나가 버린다. 대표를 보냈으면 협상 권한을 주고 합의안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합의안을 뒤집기도 한다. 노동단체들이 내부의 선명성 경쟁과 파벌 정치로 인해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다면 더 이상 정책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없을 것이다.
‘노동 존중 사회’를 국정과제로 내건 문재인 정부 들어 우리 사회의 심각했던 갈등들이 화해로 해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삼성전자와 반올림의 직업병 분쟁이 11년 만에 타결됐고, 10년간 30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던 쌍용자동차 해고자들도 복직을 시작했다. 노사 갈등과 고비용으로 해외 투자만 했던 자동차 산업은 ‘광주형 일자리’를 통해 23년 만에 국내 완성차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런 우호적인 여건에서도 노동단체들이 타협하지 않는다면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약간의 진전도 삶에 큰 보탬이 되는 실업자와 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에는 아주 많다.
사용자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대화하라니까 ‘억지춘향’으로 참여해 타협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버티면서 뒤로는 국회와 언론에 별도 플레이를 하는 경우가 많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경제 패러다임 변화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국 동남아 인도가 몰려오는데 언제까지 저임금, 장시간 노동으로 버티려는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변신하려면 노동자들의 창의와 협조가 필요하다. 미래 산업혁명의 파고를 노동자들과 합심해 넘을 생각은 않고 현상 유지에만 급급한다면 결국 공멸할 것이다.
갈등과 부침이 있더라도 노사는 끈질기고 책임감 있게 대화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사회에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고 모든 노동자의 일과 삶이 존중받는 ‘노동 존중 사회’를 앞당기는 길이다. 2기 경사노위의 성공을 바란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