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종 사회부 차장
서울시가 30년 이상 이어온 튼실한 노포(老鋪)를 골라 ‘오래 가게’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다. 2017년부터 모두 87개가 선정됐다. 서울스튜디오, 원삼탕, 경기떡집, 호미화방, 한신옹기…. 업종도 다양하고 상호명도 정겹다. 뉴트로 바람을 타고 을지다방, 효자베이커리에는 사람들이 다시 몰린다.
‘오래 가게’를 지정한 이유는 뭘까. 케이팝, 의료관광 정도만으로 외국인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거대 쇼핑몰은 도쿄, 홍콩, 싱가포르에도 많다. 금천구 시흥동 평택쌀상회는 자연 바람에 국수를 말린다. 이런 흥미로운 모습 때문에 변두리 쌀가게에도 외국인 관광객이 몰린다. 디지털 바람을 탔다. 1988년 처음 문을 열었다. 고작 30년밖에 안 됐는데도 ‘오래 가게’로 지정할 수 있을까. 식민지배, 6·25전쟁, 산업화를 거치며 살아남은 가게가 적다는 특수성이 있다. 더 오래 이어가라는 뜻으로도 불릴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뚝심을 가지고 후계자를 키워야 한다. 느티나무 가구점 거안은 해외 유학까지 다녀온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물론 이런 사례가 흔한 것은 아니다. 자녀에게 직업을 강요할 수는 없다. 직원, 친척, 희망자 중에서도 후계자를 찾아야 한다. 서계동 개미슈퍼는 앞집에 살던 꼬마가 성장한 뒤 가게를 매입해 추억을 이어가고 있다.
상인과 건물주,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도 필요하다. 지하철 서울대입구역 일대 샤로수길은 원주민이 쫓겨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영향을 덜 받았다. 관악구의 한 공무원은 “가게 규모가 작고 프랜차이즈 가맹점들이 덜 들어와서 임대료 인상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는 건물주와 임차인이 상생 협약을 맺도록 도왔다.
평범한 가게를 관광자산으로 발굴하는 노력도 더하면 어떨까. 주인들이 모를 수도 있는 가게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해 콘텐츠로 만들 수 있다. 한 홍콩 관광객은 한국인 특유의 정(情)을 느낄 수 있다며 서계동 개미슈퍼를 3번이나 찾았다. 겉보기에는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동네 가게인데도 말이다. 가만히 놔둔다고 가게가 잘 버티는 게 아니다. 백 년 전통이 쉽게 만들어지는 것도 분명 아니다.
이유종 사회부 차장 pe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