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젊은 여성 떠나는 소멸 도시, 구청이 유아원 임차료 지원 공원과 화장실도 대폭 개선… 여성 친화도시로 변신 중
일본 도쿄 도시마구 이케부쿠로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 약 10년 전엔 부랑자들의 노숙 장소였지만 대대적인 정비 후 인근 유아원 아동들의 단골 놀이터로 바뀌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
박형준 도쿄 특파원
소멸 우려 도시의 불명예를 안은 이유는 20∼39세 여성 인구의 급감 가능성 때문이었다. 일본창성회의는 2010년 5만136명인 도시마의 20∼39세 여성 인구가 2040년 2만4666명으로 50.8% 급감할 것으로 내다봤다. 불안한 치안 때문이었다. 특히 5개 지하철 노선이 지나는 이케부쿠로역 인근은 강력 범죄가 빈번해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장소로 유명하다.
젊은 여성이 없으면 출생률이 떨어진다. 아이가 없는 곳은 활력도 없고 자생하기도 힘들다. 고령화까지 감안하면 존속이 우려되는 상황이었지만 반전하는 모습이 드러났다. 그 해법을 알아보기 위해 10일 도시마구를 찾았다.
○ “젊은 여성을 잡아라”
우선 구민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도시마구에 사는지부터 분석했다. 5년간 도시마구에 정착하는 비율(정주율)을 분석한 결과, 세대별로 특성이 나타났다. 60대는 75%에 달했지만, 40대는 약 50%에 그쳤다. 특히 2030 여성은 20%에 불과했다. 젊은 여성 10명 중 8명은 도시마구에 온 지 5년이 안 돼 다른 곳으로 떠난다는 의미다. 다카노 구청장은 “20∼39세 여성을 붙잡아야 소멸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 대책 1: 유아원 확보
대부분 2030 여성인 ‘F1 회의’ 참가자들은 젊은 여성들의 최대 관심사가 유아원이라는 데 의견 일치를 봤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만 있다면 도시마구가 훨씬 매력적인 거주지로 변할 것이란 의미다. 2013년 당시 도시마구에는 유아원 대기 아동이 270명에 달할 정도로 유아원이 부족했다.
도시마구는 곧바로 유아원 건립 보조금 지급을 늘리기로 했다. 보육 시설 임차료를 건립 후 3년까지는 100%, 4년째부터는 85%를 지원하는 것이 골자다. 유아원 직원들의 주택 임차료도 일부 지원했다. 구의 보육 관련 지출액은 2014년 23억 엔(약 251억 원)에서 지난해 90억 엔으로 4배 가까이로 늘었다.
현재 도시마구 안에는 주거지 곳곳은 물론이고 슈퍼마켓 안, 심지어 구청 건물 안에도 유아원이 있다. 도시마구는 13km²의 좁은 면적에 약 30만 명의 인구가 살고 있어 인구밀도가 매우 높다. 유아원을 새로 지을 땅이 없다 보니 구청 내 자투리 공간까지 활용한 것이다. 2017년 4월 개관한 구청 내 유아원 ‘글로벌키즈 히가시이케부쿠로(東池袋)’는 일본 최초의 구청 안 유아원이다. 다카노 구청장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유아원을 짓겠다고 결심했고 이를 실천했다”며 웃었다.
○ 대책 2: 공원 개조
구청 2층의 ‘글로벌키즈 히가시이케부쿠로’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다만 구청 건물이라 아이들이 뛰어놀 야외 공간이 보이지 않았다. 구청 관계자가 도보로 5분 거리에 있는 미나미이케부쿠로(南池袋) 공원으로 유아원 아이들과 함께 기자를 인도했다. 아이들은 잔디 위에서 축구를 하면서 공원을 유아원 마당처럼 사용했다. 부모들은 공원 내 카페에서 자녀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 공원은 10년 전만 해도 부랑자들의 집합소였다. 나무가 우거져 낮에도 어두컴컴했고, 잔디는 전혀 없었다. 건장한 남자조차 낮에도 혼자 이곳으로 가는 일을 꺼릴 정도였다. 도시마구는 2009년 9월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을 과감히 폐쇄했다. 약 7년에 걸쳐 우거진 나무들을 잘라내고 잔디를 새로 깔았다. 저렴한 커피와 쿠키를 파는 카페도 새로 지었다.
도시마구는 구내 85개 공중화장실도 전면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22개는 화가까지 고용해 ‘예술 화장실’로 만들고 있다. 깨끗하고 쾌적한 화장실 또한 아이와 엄마를 또 찾아오게 만드는 핵심 요소라는 의미에서다.
○ 대책 3: 만남의 장소 확충
이날 오후 5시 반 이케부쿠로 고도모식당을 찾았다. 매월 둘째, 넷째 목요일 저녁에 무료 음식을 제공하는 곳이다. 고교생까지는 무료고 어른은 300엔만 내면 된다. 무료 급식을 실시하는 비영리단체 와쿠와쿠네트워크가 운영하고 있다.
아마노 게이코(天野敬子) 와쿠와쿠 사무국장은 “빈곤 가정 어린이를 지원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지역 어린이들과 부모들에게 친교의 장을 만들어준다는 의미도 크다”고 말했다. 식당 내 좌석 40개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2층에서 게임을 했다. 보호자들도 서로 인사하며 얘기를 나눴다. 도시마구에는 12개의 고도모식당이 있다.
지역 주민의 사랑방으로 불리는 게스트하우스 시나토잇페이도 들렀다. 히카미야마 고이치(日神山晃一) 사장은 45년 된 낡은 2층 건물이 5년 넘게 빈집으로 방치되는 것을 보고 이를 수리해 2016년 숙박업소로 재탄생시켰다. 그는 1층 공간을 마을 주민에게 무료 개방했다. 전자 재봉틀도 비치해서 누구든 사용할 수 있게 했다. 히카미야마 사장은 “마을을 살리려면 세대 간 서로 교류하는 장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공유 공간을 만들었다”고 했다.
○ 5년간의 성적표
도시마구가 변신을 시도한 지 5년. 급감이 예상되던 20∼39세 여성 인구는 2014년 4만5520명에서 지난해 4만8055명으로 약 2500명 늘었다.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가 2018년 3월 도시마구의 20∼39세 여성 인구를 추계한 결과 2045년 예상 인구가 2015년보다 18.9%만 감소한다는 결과도 나왔다. 50.8% 감소를 전망한 일본창성회의의 예상치보다 훨씬 낮은 수치다.
다카노 유키오 도시마구청장은 “소멸 가능성을 통보받은 게 오히려 도전의 계기가 됐다. 도시마구를 일본의 대표적 문화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미나미이케부쿠로 공원이 쏠쏠한 수입원이라고 했다. 2016년 재개관한 후 공원 이용료, 카페 임대료 등으로 연간 3800만 엔의 수입이 생겼다고 했다. 연간 유지관리 비용(2800만 엔)을 제외해도 꾸준히 1000만 엔 흑자가 보장되는 사업이 생긴 셈이다. 돈도 돈이지만 80대 구청장의 열정과 뚝심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다카노 구청장 같은 백전노장의 열정이 일본 사회의 저력 가운데 하나로 보였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