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 발매 기념 공연을 해야 하는데 큰일이다. 다른 연주자들을 못 믿겠다.” 최근 부산에서 만난 실험음악가 김병덕 역시 제정신이 아니었다. 김병덕 씨 제공
임희윤 기자
“있잖아. 또 하루 멀어져 간다. 내뿜은 담배 연기처럼. 작기만 한 내 기억 속에 무얼 채워 살고 있는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온건한 예를 들어봤는데도 듣기에 좀 거북하다. 회화 상황에서 쓰기에는 지나치게 시적이어서다. 평소엔 할 수 없는 표현을 육성으로 해볼 수 있는 것. 리듬, 화성, 멜로디가 돕기에 가능한 현실적 환상. 이것이 노래의 마력이다.
#2. 뭔가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미쳤다는 소리를 듣기 십상이다. 올해 30주년을 맞은 가수 이승환은 1995년 4집 ‘Human’에서 미쳤다. 당시 가요계에선 이례적으로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날아가 현지 최상급 연주자와 편곡자들을 기용해 녹음했다. 특히 본 조비, 마이클 잭슨과 작업한 데이비드 캠벨이 편곡한 ‘천일동안’의 드라마틱한 소리 풍경은 작곡자인 김동률마저 충격을 받을 정도로 대단했다. 그 애절한 색소폰 솔로마저 칙 코리아의 팀에도 몸 담았던 베테랑 연주자 에릭 매리언설의 솜씨다.
#3. 더 미친 음악가들도 있다. 이 사람들은 가끔 너무 제정신이 아닌 나머지 세계 최고의 연주자들마저 믿지 못한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앨범 속지를 보면 쉽게 볼 수 있는 설명. ‘Guitar by Taiji, Bass by Taiji…’ 리더 서태지가 작사, 작곡, 프로듀스는 물론이고 악기 연주까지 다수 도맡은 것이다. ‘나만이 내가 지은 모든 음표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강박이든 아니면 자신감이든 용기와 재능 없인 불가능한 작업이다.
#4. ‘원 맨 밴드’. 그래서 이것은 몇몇 미친 음악가들을 위한 완벽한 이상향이다. ‘아 여보게, 정신 차려, 이 친구야!’로 유명한 김수철의 ‘정신차려’는 그저 우습고 쾌활한 히트 곡에 그치지 않는다. 이 곡을 담은 김수철 7집 제목은 ‘One Man Band’. 작사, 작곡, 편곡, 노래는 물론이고 각종 기타와 신시사이저, 드럼 등 음반에 나오는 모든 소리를 김수철이 연주했다.
근년에는 재즈 드러머 한웅원이 있다. 2016년 한웅원 원맨밴드란 이름으로 낸 앨범 제목이 ‘Monologue’. 같은 얼굴의 세 명이 버틴 앨범 표지, ‘독백’이라는 음반 제목이 사람을 질리게 할 지경이다.
#5. 영국 하니까 원 맨 밴드의 전설, 마이크 올드필드가 떠오른다. 영화 ‘엑소시스트’의 불길한 배경음악으로 더 유명한 데뷔작 ‘Tubular Bells’ 앨범. 속지의 자기 이름 옆에 굳이 수십 개의 악기 이름을 다 열거해 놨다. ‘그랜드 피아노, 글로켄슈필, 파르피사 오르간, 베이스 기타, 전기기타(스피드 기타, 퍼즈 기타, 만돌린 같은 기타, 백파이프 같은 소리 나는 기타)…’
이제 진정 제정신이 아닌 사람을 만날 차례다. 독일 음악가 스테판 미쿠스. 그는 올드필드의 스케일을 지구로 확장시켰다. 세계를 돌며 민속악기를 수집하는 게 취미이자 업. 세계인의 음악 혼을 자기 육체에 빨아들였다. 인도 현악기 딜루바와 독일 관악기 코르트홀트, 모로코 현악기 겐브리와 보츠와나 건반악기 은딩고, 티베트 종과 버마 풍경(風磬)이 한 곡 안에 뒹군다. 연주자는 모두 미쿠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