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 대통령의 가장 좋은 칼 될 것”
● “윤석열, 조국 수사 뒤 사표 내고 영웅 될 것”
●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산 권력’에 비수 겨눠”
● “윤 총장 수사 압력 넣는 수단으로 검찰개혁 주장”
● “유시민, 정권 안위 위해 윤석열 공격”
● “수사권 조정, 권력 쥐면 경찰 통제 가능하다 여긴단 뜻”
● “검찰 특수부 무력화는 국가적 재앙”
● “문 대통령 검찰개혁 지시, 수사 개입 가까워”
● “여권의 검찰개혁론, 심하게 말하면 선전선동”
● “조국 동생 영장 기각, 관선변호 있었을 가능성”
● “조국이 꾸린 검찰개혁위 합류 이탄희, 대단히 실망”
● “진보서 배척받더라도 양심 세력 대변하면 그에 만족”
●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산 권력’에 비수 겨눠”
● “윤 총장 수사 압력 넣는 수단으로 검찰개혁 주장”
● “유시민, 정권 안위 위해 윤석열 공격”
● “수사권 조정, 권력 쥐면 경찰 통제 가능하다 여긴단 뜻”
● “검찰 특수부 무력화는 국가적 재앙”
● “문 대통령 검찰개혁 지시, 수사 개입 가까워”
● “여권의 검찰개혁론, 심하게 말하면 선전선동”
● “조국 동생 영장 기각, 관선변호 있었을 가능성”
● “조국이 꾸린 검찰개혁위 합류 이탄희, 대단히 실망”
● “진보서 배척받더라도 양심 세력 대변하면 그에 만족”
[지호영 기자]
19대 대선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 중앙선대위에는 ‘공익제보 지원위원회’라는 조직이 있었다.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지낸 신평 변호사(63·사법연수원 13기)는 이 조직의 공동위원장이었다. 직함만 받고 수면 아래 잠복해 있다 당선 후 공신(功臣)을 자처하는 ‘폴리페서’가 오죽 많은가.
그런데 마이크 쥔 모습조차 상상이 안 가는 이 법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경주에서 거리 유세까지 했단다. “이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는 확신이 있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 출범 후에는 대법관 후보 물망에도 올랐다. 그럼에도 스스로 고위 공직을 탐하지 않았다. 대신 서울 광화문에 ‘공정세상연구소’를 열었다. 조국(54) 전 법무부 장관이 자신의 출세가도를 포장하기 위해 쓰는 단어 ‘앙가주망(engagement·지식인의 사회참여)’은 신 변호사에게 부쩍 더 어울려 보인다.
그랬던 그가 8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조국 씨, 내려와야 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조 당시 후보자에게 “당신이 기득권자로서 지금까지 저질러온 오류와 다른 사람들에게 안겨준 상처들에 대해 깊은 자숙의 시간을 거쳐야 한다. 그 후 다시 국민들 앞에 나서도록 하라”고 충고했다. 대선 캠프 출신 인사가 공개적으로 조 후보자의 사퇴를 주장한 터라 글의 파장은 컸다. 그러나 문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9월 9일 조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했다.
그 뒤의 사태는 모두가 목도하듯 ‘두 개의 대한민국’이다. 제18호 태풍 미탁이 진영 갈등으로 갈가리 찢긴 한반도를 재차 할퀴고 간 10월 7일. ‘공정세상연구소’에서 신 변호사를 만났다(*인터뷰 1주일 후인 10월 14일, 조 장관은 전격 사퇴했다. 하지만 그가 마련한 검찰개혁안은 잔존하고 있다).
“윤석열 옹호하던 사람들 그리 표변하나”
- 사법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사법개혁의 요체는 국민이 공정하게 검찰 수사와 처분, 법원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데 있다. 검찰 단계에서 사건을 한번 조작해놓으면 법원에서 판사는 그냥 지나쳐버릴 수밖에 없다. 검찰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하다. 서초동에 많은 사람이 나와 검찰개혁을 외친 건 꼭 조국을 옹호해서만은 아니다. 그간 피해를 본 사람이 너무 많다. 결과적으로 서초동 집회가 ‘조국 수호’로 연결되는 면이 있었지만, 이를 감수하고라도 (국민이) 검찰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낼 수 있다.”
- 지금은 검찰개혁 목소리만 드높을 뿐, 법원을 개혁하자는 논의가 공론의 대상조차 되지 않고 있다.
“여권이 정략적 의도로 (검찰개혁을) 거론하고 있다는 유력한 징표다. 검찰개혁보다 더 중요한 어젠다는 검찰과 법원을 아우르는 사법개혁이다. 그에 대해 말 한마디 없이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에 압력을 넣는 수단으로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것 같다.”
- 왜 여권은 사법개혁이 아니라 검찰개혁이라는 표현을 쓸까?
“그 사람들의 머리에는 무엇이 진정한 사법개혁이냐에 관한 고민과 식견이 없다. (검찰을 개혁해야 하는 이유로) 기껏 말하는 게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의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것 아닌가. 한마디로 영혼이 없는 사법개혁 주장이다.”
- 서초동 집회는 검찰개혁에 대한 목소리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불만의 표출이기도 한데.
“윤 총장에 대한 불만은 다분히 여권이 만든 이야기의 틀 아닌가.”
- 프레임이다?
“프레임에 딱 끼워 ‘윤석열은 적폐세력을 옹호하는 사람이다. 어쩌면 적폐세력의 일원이다’ 이러는 것 아닌가? 얼마 전까지 윤 총장을 옹호하던 여권 인사들이 그렇게 표변한 태도를 취할 수가 있나.”
“유시민 씨는 이 정권이 들어서는 데 핵심 역할을 한 사람이다. 정권의 안위를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니 진영논리 위에 설 수밖에 없다. 정권에 부담이 될 만한 수사가 벌어지고 있고, 거기서 위기감을 느끼니 윤 총장을 공격하는 거겠지.”
“조직이 시키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한다”
그렇다고 신 변호사를 ‘검찰 옹호론자’로 규정해선 곤란하다. 그는 검찰 특유의 조직문화에 누구보다 쓴소리를 아끼지 않아온 인물이다. 신 변호사는 “(나중에)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으로도 근무한 어느 부장검사가 여러 사람 있는 자리에서 건배사를 하며 난데없이 ‘저는 조직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언제든 다 할 각오가 돼 있다. 건배’ 이렇게 외치더라. 이 친구가 제정신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 검찰 소속이 아닌 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말인가?
“그렇다. 그것이 검찰의 문화이자 잘못된 의식이다. ‘진보귀족’들이 노무현 정권에서 사법개혁 작업을 했을 때 과연 이를 몰랐을까? 알았다면 왜 안 고쳤나? 권력을 쥐고 있으니 ‘검찰이 조금 부스럼이 있지만 너희 위에 우리가 있다. 별걱정 없다’는 인식을 품었던 거겠지.”
- 검찰의 그런 행태를 보더라도 검찰 권한 축소는 불가피하지 않나?
“그렇다. 검찰의 조폭 문화도 개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조국 전 장관은 주간지 ‘시사인’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입법을 통해 검찰개혁을 불가역적으로 법제화·제도화하는 데 주력했다. 크게 두 가지다. 독립기구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라고 말했다.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은 오랫동안 ‘진보적 검찰개혁’의 정수(精髓)로 꼽혀왔다. 신 변호사에게 이렇게 물었다.
“나는 오랫동안 공수처를 열렬히 지지해왔다. 그런데 이번 사태를 보면서 느낀 게 있다. 수장을 대통령이 임명해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고 하는 공수처라면 그건 없는 게 더 낫다.”
- 공수처가 제2의 검찰이 될 우려가 있다는 뜻인가?
“검찰보다 더 심한 조직이 될 것이다.”
- 조 전 장관은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공수처장을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해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그 사람을 대통령에게 임명토록 하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야권도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중립적 인물로 합의하는 형태라면 괜찮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여야 합의의 모양새를 띠지만 다수파를 차지한 여권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론 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벌써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출신 모 인사가 공수처장 물망에 오른다는 얘기가 돈다. 만약 대통령 마음에 맞는 사람을 공수처장에 임명하면 어떻게 되겠나. 대통령의 가장 좋은 칼이 되지 않겠나?”
- 진보 쪽 인사들은 경찰의 힘을 키움으로써 검찰의 힘을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번에 보라. 국회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경찰청장에게 직접 고발장을 건네고, 청장은 포즈까지 취해주지 않았나.”
권력과 경찰
10월 4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민갑룡 경찰청장에게 전날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보수단체 집회 주최자인 전광훈 ‘문재인 하야 범국민투쟁본부’ 총괄대표 등에 대해 내란선동 혐의로 수사를 의뢰하는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이 장면에서 보듯 경찰은 권력이 다루기가 훨씬 쉽다. 검찰 권한을 약화시키고 경찰 권한을 키우겠다는 주장 밑에 숨은 속뜻이 ‘우리가 손쉽게 다룰 수 있는 경찰에 권한을 많이 줘서 편하게 통치하겠다’는 것이라면 정말 곤란하다.”
- 민주화운동 했던 인사들은 경찰에도 피해의식이 있을 텐데 왜 경찰 권력을 키우려 할까?
“권력을 잡으면 경찰을 통제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 아니겠나.”
- 여권 일각에는 검찰이 결국 공수처는 받고 검·경 수사권 조정은 막을 것이라는 전망이 횡행한다.
“수사권 조정은 매우 위험하다. 경찰에 수사권을 일부 부여해 원활히 수사할 수 있도록 하더라도 경찰의 수사권 행사에 대한 대책은 있어야 한다. 최소한의 통제장치 없이 경찰에 수사권을 줘버리면 경찰서 주변 한정식집 영업만 잘될 것이다.”
- 여권은 경찰 권력이 비대해질 거라는 우려에 ‘분권을 지향하는 자치경찰제를 함께 시행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반박한다.
“자치경찰제 도입을 주장하면서 수사권 조정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꼴이다. 여권의 그와 같은 주장은 아직까지 전혀 검증된 바 없다.”
- 문 대통령이나 여권은 공수처가 없어 대통령 친인척·주변 비리를 제때 수사 못했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인사권이 무서워 검찰이 대통령 주변을 조사하지 못한 것 아닌가?
“그렇다.”
- 그런데 대통령 임기 중반에 검찰총장이 ‘살아 있는 권력’을 향해 칼을 겨눴다.
“한국 검찰사상 생생히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 비수를 겨눈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과거에는 정권 임기 말에 가서 힘이 떨어질 때 아들이나 손댄 정도다. 지금은 권력의 심장에 비수를 겨눴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흑묘백묘론
- 권력형 비리로 밝혀질 수도 있지만, 그와 반대 결론이 날 수도 있다. 그러면 윤 총장이 수사 결과에 따른 책임을 모두 떠안게 될 텐데.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 과정이 편파적이라고 보지 않는다. 법원의 1차적 판단이지만, 그간의 영장 발부를 통해 확인되는 사항으로 봐서는 수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면 조국 일가가 여기서 빠져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리고 윤 총장은 아마 사표를 낼 것이다.”
- 조국 일가 수사가 끝난 후에 총장직을 그만둔다는 말인가?
“사표를 냄으로써 그 사람은 영웅이 될 것이다. 나는 윤 총장이 대단한 야심가라고 본다. 사표를 내고 나가서 정계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도 있고. 그 사람이 가진 흡입력과 총체적인 힘을 고려할 때 어느 정치인도 당해낼 수 없을 것이다. 윤 총장이 큰 베팅을 하겠지.”
- 검찰에도 ‘윤석열 사단’이라는 말이 횡행할 정도로 총장 측근들이 핵심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이 역시 위험 신호 아닌가?
“위험하다. 그러니 윤 총장도 진정 국민을 위해 검찰을 이끌어가는 사람은 아니다. 검찰 조직에 대한 낡은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이다.”
- 페이스북에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을 인용하면서 윤석열 개인에 문제가 있어도 쥐만 잘 잡으면 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로 썼던데.
“우선은 급하지 않나. 대표적 진보귀족 일가의 엄청난 비리가 드러났음에도 조국을 옹호하는 세력이 하나로 뭉쳐 나라를 두 쪽으로 갈라놓고 있다. 검은 고양이면 어떻고 흰 고양이면 어떤가. 일단 쥐부터 잡아야지.”
- 다른 검찰총장이었다면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를 못 했을까?
“검찰 안에 누가 있겠나. 윤 총장이 후에 어떤 행보를 하건 (지금의 수사는) 그 자체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사람이 다 완벽할 수야 있겠나. 윤 총장은 나름대로 역사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윤 총장이 나중에 정치인으로 변신하면 국민의 여망을 조금 더 헤아리는 공감 능력을 키워 훌륭한 정치인이 될 수도 있다.”
문 대통령은 9월 30일 조국 당시 장관으로부터 ‘인권을 존중하고 민생에 집중하는 검찰권 행사 및 조직 운용 방안’에 대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검찰권의 행사 방식, 수사 관행, 조직문화 등에서 검찰이 앞장서서 개혁의 주체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야당은 문 대통령의 ‘검찰총장에 지시한다’ 발언을 두고 조국 일가 수사에 개입했다고 비판한다.
“수사 개입에 가깝다. 뭔가 크게 어긋나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됐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 대통령도 현재 논의되는 검찰개혁안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방증 아닌가?
“나는 권력의 심층부까지 들어가보지 않아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다. 하지만 부적절하다. (대통령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안 된다.”
“특수부 축소 주장은 검찰수사 무력화”
- 그 직후 윤 총장이 특수부를 축소하는 방안을 전격적으로 내놨다.
“검찰이 너무 많은 걸 수사하려는 행태는 문제가 많다. 특수부 축소는 오래 전부터 논의돼왔다. 그런데 여기서 더 나아가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까지 없애거나 힘을 뺀다? 그런 생각은 지나치다. 수사권 조정을 다 끝내고 합리적 제도를 갖추게 된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검찰의 직접 수사가 하는 역할은 대단히 크다. 특수부 축소 주장은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겠다는 욕망이 배어 나온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 특수수사가 적폐청산 수사에서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특수부 축소가 진보적 사법개혁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특수부 등 검찰의 직접수사가 빛나는 전통을 갖고 있는 미국·일본의 예에서 보듯 검찰의 특수수사가 공동체를 위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일이다. (여권의 검찰개혁론자들은) 정작 특수수사의 그와 같은 순기능을 다 가리고 있다. 어불성설이다. 여권에서 주장하는 검찰개혁론의 상당부분은 심하게 말하면 선전선동이다.”
- 조 전 장관의 검찰개혁안이 근본 대안까지는 아니더라도 진전이라 평가할 수 있지 않나?
“특수부를 없애거나 무력화하면 국가적으로 엄청난 재앙이 올 수 있다. 그런 걸 왜 해야 하나? 진전이 아니라 위험한 행보다. 수사권 조정한다고 경찰에게 수사종결권을 준다?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인터뷰 이틀 후인 10월 9일 명재권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전날(8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배임수재, 증거인멸교사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조국 당시 장관 동생 조모 씨에 대한 영장을 기각했다. 이에 대해 이충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인들에게 보낸 A4용지 2장 분량의 글에서 “법원 스스로 법원에 오점을 찍은 날”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이 교수는 “조국 동생은 종범(從犯)에게 증거를 인멸하고 외국으로 도망하라고 교사했다. 이런 영장을 기각한 명재권은 법원장의 의향에 따라 영장 재판을 해온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2004년 서울중앙지법에서 영장전담 부장판사로 재직할 때 경험도 털어놨다. 여택수 당시 청와대 부속실장 직무대리가 3억 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건을 언급하면서 “(내가) 영장(심사)을 담당하게 됐는데 법원행정처 고위 법관이 필자에게 강하게 기각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왜 노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 받다 사망하게 됐나”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동생 조모(52) 씨가 10월 9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직후 경기 의왕시의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조국 일가에 대한) 수사에 압력이 미쳐오고 있다. 이충상 교수가 말한 대로 법원의 위계질서가 영장재판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있다. 그것이 바로 관선변호다. 동료 판사나 위의 판사들이 특정 사건에 청탁을 넣어 재판을 왜곡시키는 행태다. 사실이라면 개탄할 일이다.”
신 변호사는 2009년 출간한 저서 ‘한국의 사법개혁’에 노무현 정부 당시 사법개혁 움직임을 두고 “사법개혁위원회나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를 주도한 인물들은 노무현의 취향에 맞춘 사람들로 그들은 한때 권위주의 정권에서 고초를 겪으며 민주화투쟁을 하였으나 진보정권이 들어선 이래 온갖 사회적 이익의 향유에 흠뻑 젖은 소위 ‘진보귀족’들이었다”고 썼다.
- 조 전 장관 등을 ‘진보귀족’이라고 비판했다.
“‘진보귀족’이라는 용어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 단면을 정확히 지적했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 진보귀족 아닌가? 진보를 표방하고 있지만 생각이나 행동이 일반 국민의 정서와는 동떨어져 있고 특권의식에 젖어 있다.”
- ‘진보귀족’이 주축이었더라도 노무현 정부의 사법개혁 성과를 부정할 수는 없지 않나?
“당시 사법개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사법시험 폐단을 시정했고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했다. 또 공판중심주의 절차를 밟도록 했다. 하지만 껍데기만 화려하게 치장했지 속 내용은 없었다. 국민참여재판은 국민에게 무슨 실효성이 있나. 공판중심주의가 지금 법정에서 실제로 어느 정도 통용되고 있나. 당시 전 국가적인 가용 자원을 총동원하다시피 했으면서 검찰의 잘못된 관행이나 문화는 왜 못 바꿨나. 정말 대단한 성과를 거둔 것이라면 얼마 있지 않아 왜 노무현 전 대통령이 부당한 검찰수사를 받다 사망하게 됐나? 다 그들 잘못이다. 누구 탓할 것 없다.”
잠시 시곗바늘을 십수 년 전으로 돌려보자.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이던 2002~2005년, 조국 전 장관은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으로 활동했다. 그에 앞선 소장은 한인섭 형사정책연구원 원장(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이었다. 한 원장은 이후 사법개혁위원회(사개위) 위원으로 일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사법개혁비서관을 지낸 김선수 대법관도 당시 사개위에 참여했다. 조 전 장관의 전임인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역시 그 당시 사개위원으로 활동했다. 신 변호사는 “그 사람들이 사법개혁을 다 그르쳤다”고 일갈했다. 그가 근거를 설명했다. 다소 길지만 신 변호사가 ‘조국 개혁안’에 반대하는 맥락이 잘 담겨 있다.
“진보귀족들은 사법제도로 피해 입은 국민들의 목소리는 아예 못 들은 체했다. 그러면서 법조 기득권에게서 약간의 양보를 얻어내는 식으로 권력과 타협했다. 노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사법개혁에 합의하고 난 후 사개위를 대법원 산하에 뒀다. 사개위가 건의한 내용을 토대로 후에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에서 입법안을 만들어가는 구도를 취했다. 사개위에서 심의한 안건은 대체로 대법원장이 부의한 안건이었다. 사개추위도 마찬가지다. 법원과 검찰이 자신들의 입장에서 마련한 사법개혁 초안을 사개추위에 제출했다. 이와 같이 겹겹이로 안전판을 깐 상태에서 국민의 소리가 올라오는 것을 철저히 막았다. 이러니 국민의 뜻을 존중하는 사법개혁이 가능할 리 있었겠나. 그렇게 사법개혁을 그르친 사람 중 한 명이 조국이다. 그 역시 당시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진보귀족의 사법개혁론을 대중에게 설파했다. 이제 와서 조국을 검찰개혁의 유일한 적임자라고 한 것은 어불성설이다. 조국의 검찰개혁안은 한마디로 합당하지도 않고 위험하며, (그 안에) 정략의 썩은 냄새가 진동한다.”
“윤석열도 정권 입맛 맞춰 사법농단 수사”
-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부에 민주당 서영교·유동수 의원과 전병헌 전 의원,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과 이군현·노철래 전 의원 등이 재판청탁을 했다는 의혹이 유야무야됐다.
“이미 묻혀버렸다. 재판청탁이라 쓰지 말고 재판왜곡이라 써달라. 힘 있는 사람이 개입하면 반드시 재판 결과의 왜곡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의 민주적 질서를 심대하게 해치는 행위다. 전관예우의 폐해가 1이라면, 관선변호의 폐해는 10 혹은 100에 이른다. 이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말하지 않고, 말을 꺼낸다 한들 곧 수면 아래로 잠긴다. 내가 무려 30년 전에 그걸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표면화되지 않는다.”
- 사법농단 이슈가 정국을 뒤덮었을 때 여권에서 특별재판부 주장까지 나왔었다.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사그라졌다.
“그 자체만으로 (여권이) 사법개혁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윤석열 총장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재판왜곡에 대한 수사는 묻어버렸고, 사법농단 사건만 집어 정권 입맛에 맞는 수준으로 수사를 해서 (정권에) 갖다 바쳤다.”
- 김명수 대법원장 임기가 3분의 1이 지났다. 그간의 임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김 대법원장 역시 보통의 법조인들이 갖는 고식적인 사고체계에서 벗어난 사람이 아니다. 공정한 재판을 하는 데 있어 사법의 독립과 책임은 양대 지주와도 같다. 이것이 세계 법학의 트렌드다. 김 대법원장은 이런 트렌드와 동떨어진 채 사법의 독립 혹은 재판의 독립만 반복해 말하고 있다. 결국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겨놓으라는 뜻이다. 그래서 내가 ‘사법 무흠결주의’라는 용어를 썼다. 판사의 권한을 계속 강화하겠다는 뜻이다.”
- 자신들이 국민보다 더 위에 있다는 인식의 발로라고 봐야 할까?
“특권 의식이 ‘사법 무흠결주의’로 이어진다. 그 사람들 머릿속에는 국민이 없다.”
-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제왕 중에서도 제왕적인 대법원장’이라는 평을 들었었다. 김명수 대법원장 역시 제왕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나도 (주변에서) 여러 가지 말을 듣고 있다. 국민이 바라는 대법원장은 아니다.”
- 임기가 아직 4년 남았는데, 법원 내부에서라도 자정 작용이 일어날 가능성은 없나?
“일어나지 않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사법부의 온갖 치부가 드러나는 혼란기에도 관선변호에 대해 양심고백을 한 판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법원에 들어가는 순간 특권적 지위가 주어진다. 그걸 왜 그만두겠나. 판사 싫증나서 변호사 개업해도 사법부 체제에 순응하다 나오면 여러 전관예우 혜택도 누릴 수 있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왜 그걸 포기하겠나? 그래서 저 같은 사람을 두고 ‘저 사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다.”
신 변호사는 대구지방법원 판사 시절이던 1993년, 당시 법원 판사실에서 돈 봉투가 오간 사실을 폭로했다가 같은 해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했다. 지난 2017년 2월, 당시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소속이던 이탄희 판사가 사표를 제출했다. 법원행정처 발령 후 ‘판사 뒷조사 문건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다. 그의 사표는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이 세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정작 신 변호사는 “이탄희도 마찬가지”라며 말을 이었다.
“이탄희, 그 정도 분별력도 없나?”
[지호영 기자]
- 로스쿨이 지금은 가진 자를 위한 제도가 됐다고 자조하는 목소리가 퍼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이런 결과까지 알고 만들진 않았겠지. 나 역시 누구보다 사시의 폐단을 잘 아는 사람이고 예전부터 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의 로스쿨 제도는 철저히 진보귀족에 유리한 제도로 변질됐다. ‘조국 사태’를 계기로 대학 입시에서 스펙 쌓기가 갖는 폐단이 노정됐다. 로스쿨에서는 아직도 스펙을 무제한으로 허용한다.”
- 입시 과정에서 말인가?
“그렇다. 로스쿨은 진보귀족이 많이 분포해 있는 학계 인물들이 가장 유리하게 써먹을 수 있는 제도다. (진보귀족의 자녀들은) 유학 다녀왔다는 사실이나 외국 활동을 증빙할 만한 자료를 기재하는 식으로 스펙을 만들 수 있다. 혹은 그들끼리 논문 품앗이를 할 수도 있다. 설사 보통 가정의 자녀들이 입학한다고 한들 학비가 비싸니까 아르바이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학점을 잘 받기가 어렵다. (입시 과정이나 입학 후에도) 기득권자에게 매우 유리하게 짜인 제도가 바로 로스쿨이다.”
- 진보 지식인으로서 정권 핵심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부담스럽지 않나?
“(진보진영에서) 나에게 온갖 비난을 하지만 오해가 언젠가 풀리지 않겠나. ‘조국 사태’를 계기로 그간 진보 쪽을 바라봤다가 돌아선 양심 세력이 여론조사 상 10% 정도 있다. 이분들이 향후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만약 계속 진보 쪽에서 배척받더라도 10% 양심 세력의 견해를 어느 정도 대변하는 역할을 내가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 그 열쇳말이 ‘공정세상’인가?
“그렇다. 보수나 진보가 아니라 기득권 세력과 기득권이 아닌 세력으로 나눠보면 우리 사회가 물길 열리듯 쫙 보인다.”
권력과 초심
-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절반가량 지나고 있다.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나도 이 정부를 탄생시키기 위해 역할을 한 사람이다. 지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상상을 못 했다. 국민이 완전히 두 쪽으로 갈렸다. 집권 세력에 ‘초심으로 돌아가달라’고 말하고 싶다.”
- 초심이라면?
“이 사람들이 젊은 시절 민주화운동을 했다. 민주화운동은 우리 공동체를 조금 더 낫게 만들겠다는 선의에서 비롯했을 거다. 하지만 지금 집권 세력에는 그렇지 않은 모습이 많이 엿보인다. 이들이 초심을 되돌아보는 작업이 꼭 필요하다.”
- 여전히 문 대통령을 비판적으로나마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 셈이지. 대통령이 다시 잘 일어서시길 바란다.”
신 변호사는 헤어지면서 “진정한 사법개혁의 의미가 공론화될 수 있도록 언론이 역할을 해달라”고 말했다.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