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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세상은 넓고 모래는 많다?

입력 | 2019-10-19 03:00:00

◇모래가 만든 세계/빈스 베이저 지음·배상규 옮김/362쪽·1만6000원·까치




집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도 운동장, 길거리, 화단, 놀이터에서 흔히 밟히는 게 모래다. 집에 돌아올 때면 모래는 더러운 흙먼지쯤으로 여겨져 깨끗하게 털어내고 일상생활과 분리해야 하는 껄끄러운 존재가 된다.

그런데 지구 한편에서는 이 모래 때문에 싸움이 난다. 한 줌이라도 더 모래를 차지하려고 도둑질, 살인까지 난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이는 흔해 빠진 줄 알았던 모래가 지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져 간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모래가 사라진다는 건, 인간이 그 위에 쌓아올린 인간 문명에도 위기가 닥쳤음을 뜻한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모래가 유한한 자원임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썼다. 뉴욕과 플로리다는 물론이고 인도, 아랍에미리트, 중국 내몽골 등 모래를 둘러싼 세계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우리가 몰랐던 모래의 진짜 모습을 들려준다. 책은 모래를 찾아 떠나는 가이드북이자 인간의 문명을 짚은 역사서인 동시에 알찬 환경서이기도 하다.

모래라고 다 같은 모래는 아니다. 입자 크기, 재질, 성분 구성비에 따라 인간에게 더 유용한 모래가 있다. 지질학 척도에 따르면 모래는 통상 0.0625mm에서 2mm 크기의 단단한 알갱이를 말한다. 보통 200만 년에 이르는 일정 주기를 반복하며 생성된다. 지질학자 레이먼드 시버는 “모래 알갱이는 영혼은 없지만 환생한다. 침전, 퇴적, 융기, 침식 과정에서 새로 태어나고 조금 더 둥글어진다”고 썼다. 지금 밟고 지나간 모래의 출생을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인류의 역사도 초월할 가능성이 높다.

모래의 70%는 석영이라는 광물로 이뤄져 있다. 반도체, 스마트폰, 유리 등에 활용하는 이 물질은 ‘실리카(silica)’로도 불리며 현대문명에서 쓰임새가 많다. 석영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산소와 규소의 화합물이다 보니 모래를 사실상 무한한 자원으로 여기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미 하와이대의 한 연구원은 세계 해변에 각각 1mm³의 모래가 뒤덮여 있다고 가정해 모래 알갱이가 750경(京)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모래로 만든 인공섬 위에 대규모 주거시설, 리조트, 요트 마리나 등을 건설 중인 카타르 도하의 모습. 인공섬을 만들기 위해 페르시아만 바닥에 깔린 모래를 퍼올리며 침전물 부유, 수질오염 등을 유발했다. 사진 출처 Pixabay

써도, 써도 남아돌 것 같은 모래의 고갈은 현실이 됐다. 인간이 그만큼 모래를 무분별하게 채취했기 때문이다. 채취한 모래 대다수는 급속한 도시화와 맞물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쏟아부어졌다. “지구상 사람 한 명당 콘크리트가 40t씩 존재한다”는 지적처럼 인류의 70%가 콘크리트 건물에 살며, 도시 인구는 매년 6500만 명씩 늘고 있다. 인류가 연간 소비하는 모래와 자갈은 500억 t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두바이, 카타르에서 진행한 인공 섬 프로젝트는 모래 소비의 신기원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의 역사 자체가 곧 간척의 역사인 네덜란드, 한국 서해안에서도 간척사업은 활발하다.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만들어진 새로운 대지에서는 공기를 제외한 모든 게 인공”이라고 말한다.

모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자 모래는 곳곳에서 역습을 벌인다. 모래 해변은 사라졌고, 채취장 인근 생태계는 망가졌다. 지난 10년간 인도, 스리랑카에서는 물에서 숨쉴 수 없게 된 악어들이 강변에 출몰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래로 땅을 매립한 베트남 난사군도 등은 영토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을 뜻하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은 어쩌면 인간 문명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일지 모른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