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가 만든 세계/빈스 베이저 지음·배상규 옮김/362쪽·1만6000원·까치
그런데 지구 한편에서는 이 모래 때문에 싸움이 난다. 한 줌이라도 더 모래를 차지하려고 도둑질, 살인까지 난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이는 흔해 빠진 줄 알았던 모래가 지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져 간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모래가 사라진다는 건, 인간이 그 위에 쌓아올린 인간 문명에도 위기가 닥쳤음을 뜻한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모래가 유한한 자원임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썼다. 뉴욕과 플로리다는 물론이고 인도, 아랍에미리트, 중국 내몽골 등 모래를 둘러싼 세계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우리가 몰랐던 모래의 진짜 모습을 들려준다. 책은 모래를 찾아 떠나는 가이드북이자 인간의 문명을 짚은 역사서인 동시에 알찬 환경서이기도 하다.
모래의 70%는 석영이라는 광물로 이뤄져 있다. 반도체, 스마트폰, 유리 등에 활용하는 이 물질은 ‘실리카(silica)’로도 불리며 현대문명에서 쓰임새가 많다. 석영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산소와 규소의 화합물이다 보니 모래를 사실상 무한한 자원으로 여기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미 하와이대의 한 연구원은 세계 해변에 각각 1mm³의 모래가 뒤덮여 있다고 가정해 모래 알갱이가 750경(京)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모래로 만든 인공섬 위에 대규모 주거시설, 리조트, 요트 마리나 등을 건설 중인 카타르 도하의 모습. 인공섬을 만들기 위해 페르시아만 바닥에 깔린 모래를 퍼올리며 침전물 부유, 수질오염 등을 유발했다. 사진 출처 Pixabay
두바이, 카타르에서 진행한 인공 섬 프로젝트는 모래 소비의 신기원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의 역사 자체가 곧 간척의 역사인 네덜란드, 한국 서해안에서도 간척사업은 활발하다.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만들어진 새로운 대지에서는 공기를 제외한 모든 게 인공”이라고 말한다.
모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자 모래는 곳곳에서 역습을 벌인다. 모래 해변은 사라졌고, 채취장 인근 생태계는 망가졌다. 지난 10년간 인도, 스리랑카에서는 물에서 숨쉴 수 없게 된 악어들이 강변에 출몰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래로 땅을 매립한 베트남 난사군도 등은 영토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