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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감정이 스며든 정치가 사회를 정의롭게 한다

입력 | 2019-10-19 03:00:00

◇정치적 감정/마사 누스바움 지음·박용준 옮김/684쪽·3만2000원·글항아리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로 우리 사회는 반으로 갈라졌다. 서초동과 광화문. 진영논리로 둘러싸인 채 각자 목소리를 높인다. 심지어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혐오하기까지 한다.

사랑의 해방에 대한 이론으로 유명한 저자는 정치에서 감정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 책에서 호소한다. 분노, 두려움, 공감, 혐오, 시기심, 죄책감, 비애, 사랑…. 그러나 자유주의 정치철학에서 ‘감정’은 학문의 대상이 아니었다.

저자는 법, 철학, 문학, 오페라, 건축, 동물학 등을 넘나들며 감정이 어떻게 공적 영역을 지배하는지를 분석한다. 그중 ‘혐오’ 부분이 가장 눈에 띈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의 공동체는 늘 경쟁적인 서열 매김이 일어난다. 복종의 핵심 장치는 혐오였다. 혐오의 ‘1차적 대상’은 땀, 오줌, 배설물, 정액, 피 등 동물적 특성을 상기시키는 신체 분비물. 오염을 피하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투사적 혐오’는 사회적이다. 머릿속에서 ‘더 동물적’이라고 덧씌운 하위계층을 만들어내 배제하고, 낙인찍는다.

“프랑스 혁명 이후 유럽의 정치는 박애정신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 군주에 대한 두려움, 복종으로는 더 이상 사람들이 한데 뭉칠 수 없었다. 시민들은 서로 협력해 새로운 삶의 방식들을 생각해내야 했다. …혐오는 어떤 집단들에 기본적인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들을 동물로 그린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상적 연결을 부추기는 것은 사랑이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를 위해 중요하다.”

전승훈 문화전문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