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폭락’ 먼저 겪은 일본, 아동 인구가 결국 집값 좌우 출산율 하락에도 급등한 서울, 투기현상 아니곤 설명 어려워 주거 안정은 국가의 책임이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아베노믹스’가 시작된 2013년 6대 도시 주택가 지가(地價)는 30년 전인 1983년 수준까지 내려가 있었다. 버블 붕괴 후 15년이 지난 2006년에 도쿄를 비롯한 일부 대도시에서 집값이 반등하기도 했지만 불과 2, 3년 후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인구가 감소하고, 마을이 사라지는 나라에서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러나 2013년 이후에는 지속적으로 집값이 상승하는 지역이 일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본인들도 예상하지 못한 새로운 현상이다.
일본의 47개 광역지자체 중 2011년 대지진의 영향을 받은 미야기현과 후쿠시마현을 논외로 하면, 10개 지자체에서 6년 연속 집값이 상승했고, 그중 4개 지자체에서는 연평균 증가율이 1%를 넘었다. 오키나와, 도쿄, 히로시마, 후쿠오카 순으로 집값 상승률이 높다. 그리고 이 네 곳은 15세 미만 인구 증가율 순위에서도 1∼4위를 차지한다. 일본에서는 인구가 증가하는 곳이 아니라 15세 미만 인구가 증가하거나 감소율이 낮은 곳에서 집값이 오른다.
일본의 부동산 환경에서는 ‘갭투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집값은 주로 실수요에 의해 움직인다. 일본은 실수요가 아니면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을 받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고 양도소득세가 완전히 감면되는 경우도 없다. 투기 수요가 아니라 실수요에 의해 집값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린이 인구가 증가하는 곳에서 경기가 좋을 때 집값이 오르는 것이다.
최근 한국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장년층 인구가 서울을 떠나 경기도로 이주하고 있다고 한다. 젊은 부모가 떠나자 서울의 어린이 인구도 매년 감소하고 있다. 최근 한국의 15세 미만 인구는 매년 2%씩 감소하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그 이상으로 매년 3.5%씩 감소하고 있다. 경기도 침체 국면이라 서울의 오피스 공실률은 10%에 달한다. 그런데도 최근 서울의 집값이 급등했다. 투기 수요를 배제하고는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다. 한국의 부동산 대출 제도와 부동산 관련 세제는, 20년이 넘도록 부동산 시장이 침체되어 있던 일본보다도 더 느슨하다. 관련 법규와 규정이 정권과 상황에 따라 빈번하게 바뀌니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
강남의 일부 고급 아파트 가격이 얼마나 되든 정부가 간섭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위해 도시환경과 부동산 세제, 대출 제도 등을 정비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의무다. 주거에 대한 불안감이 출산율 저하 등 현재 한국이 당면한 많은 문제의 가장 주요한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내년 4월 총선 이전에 각 당은 그들이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을 국민 앞에 제시하고, 유권자들은 장기적 비전을 가진 부동산 정책이 여야 합의에 의해 추진될 수 있도록 정치가들을 압박해야 한다. ‘일본을 이기자’는 구호가 난무하는 시대다. 부동산에서도 일본보다 더 안정적인 주거환경을 갖게 되는 날을 고대한다.
박상준 객원논설위원·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