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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왕실의 삼종신기[횡설수설/서영아]

입력 | 2019-10-21 03:00:00


나루히토(德仁) 일왕의 레이와(令和) 시대는 5월 1일 ‘삼종신기(三種神器)’ 계승식과 함께 시작됐지만, 정작 즉위식은 내일 거행된다. 80여 개국 정상급 인사, 16개국 국왕이 직접 참석한다. 일본 빼고 군주제 유지 국가가 27개국이라니, 세계 왕이 절반 넘게 도쿄에 집결하는 게 된다.

▷‘덴노(天皇)’ 즉위의식은 서기 800년경부터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고 한다. 관료와 국내외 사절들이 정렬한 가운데 새 왕이 다카미쿠라(高御座)라는 단상에 올라 즉위를 선포한다. 나루히토 일왕은 내일 오후 1시에 이 행사를 하게 된다. 태풍 ‘하기비스’ 피해로 카 퍼레이드가 다음 달 10일로 미뤄졌고, 이어 14∼15일 ‘다이조사이(大嘗祭)’라는 추수감사 의식을 거치면 즉위 관련 의식은 모두 끝난다. 새 연호를 발표한 4월 1일부터 7개월 넘게 즉위 행사가 이어지는 셈이다.

▷일본 왕위의 상징인 삼종신기(거울 검 굽은구슬)는 천손강림했다는 아마테라스 오미가미(天照大神)로부터 대대손손 왕에게 계승됐다는 왕실 보물이다. 일왕이 ‘신의 자손’이라는 설화에 기초한다. 사실 삼종신기는 실물을 보았다는 사람이 없고, 역사서 중에는 유실됐다는 기록도 적지 않지만 아무도 진위를 확인할 수 없다. 시중에 떠도는 삼종신기의 사진은 ‘상상도’이고 즉위 행사에서 사용되는 것조차 복제품이라고 한다(이 또한 아무도 본 적이 없다).

▷일왕의 위상은 부침을 거듭했다. 12세기부터 이어진 막부 시대에 명맥만 존속되던 왕은 존왕양이(尊王攘夷)를 내세운 1868년 메이지유신 이후 최고권력자로 부상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인들은 ‘덴노를 위해’ 기꺼이 죽어갔다. 그러나 2차 대전 패전 이후 왕은 모든 권력을 내놓은, 국민 통합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일본 왕실은 어느 때보다 위기에 봉착해 있다. 딸이 많은 가계라 나루히토 일왕의 후계자는 동생인 후미히토 왕세제와 그 아들 히사히토 왕자 2명만 남았다. 여론조사에서는 ‘여성 일왕’에 대해 60∼70%의 찬성 응답이 나오지만 보수파들의 반대도 끈질기다.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당시 총리가 여성 왕도 인정하도록 왕실전범을 개정하려 했지만 마침 왕세제 부부가 임신 사실을 공표하면서 무산된 일도 있다.

▷한반도에 대한 친근감을 늘 거론했던 아키히토 상왕에 이어 나루히토 일왕도 8월 15일 과거사에 대해 “깊은 반성”을 표현했다. 그가 삼종신기만이 아니라 부친의 평화에 대한 신념도 계승해주는 걸까. 즉위식 축하를 위한 이낙연 국무총리의 방일이 한일 간 얼음을 녹이는 첫걸음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영아 논설위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