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관 출신 첫 정보수장 발탁… 총리 취임 후 한중수교 물꼬 박종철 사건 책임지고 사임, 반기문 前유엔총장의 멘토
1930년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출생한 고인은 19세 때 부모와 헤어져 서울로 홀로 월남했다. 고구마 장사로 돈을 벌며 주경야독(晝耕夜讀)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입학하자마자 6·25전쟁이 발발해 군대에 입대했다. 통역장교로 복무하면서 현역 군인 신분으로 고등고시(외교)에 합격했다.
노 전 총리는 주인도 대사, 주제네바 대사 등 주요 보직을 거치며 외교관으로 탄탄대로를 달렸다. 그의 공직 인생을 바꾼 것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만나면서다. 5공화국 시절 외무부 장관(1980∼1982년), 안기부장(1982∼1985년), 국무총리(1985∼1987년) 등 그의 핵심 커리어를 모두 거쳤다. 전 전 대통령의 신임은 유별났다. 전 전 대통령은 외무부 장관 임명장을 주며 “당신이 노신영이오? 정보보고를 보니 괜찮다고 해서 시켰소. 잘하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군 출신이 독점했던 안기부장(중앙정보부장 포함)을 외교관 출신으로 처음 맡기도 했다. 그는 처음엔 고사하다가 맡은 뒤로는 “나는 누가 안기부장인지를 국민들이 모르면 모를수록 사회는 안정되고 국정은 잘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안기부장 시절 198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을 건의하고 미국행을 극비리에 주선하기도 했다. 1985년부터 국무총리로 일하면서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와 이른바 ‘노-노 체제’를 이뤘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르고 한중 수교의 물꼬를 트는 등 업적을 남겼다. 이 때문에 전 전 대통령이 한때 노 전 총리를 자신의 후계로 꼽기도 했지만 군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노 전 총리는 1987년 5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자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며 사임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정계 진출 권유를 뿌리치며 롯데복지재단과 롯데장학재단의 이사장을 맡았고 최근까지 롯데그룹 총괄고문을 지냈다. 서울대 법대 동기생이었던 부인 김정숙 여사는 2009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경수(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철수 씨와 은경 혜경 씨 등 2남 2녀가 있다. 류진 풍산 회장이 사위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25일 오후 3시 대전현충원. 02-2072-2091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