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 장난감 못 사 우는 아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놀이공원의 출구에 도착할 때까지 아이는 오리 입을 하고선 저만치 뒤에서 터덜터덜 걸어왔다. 몇 번을 “빨리 와∼”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계속 한여름 아스팔트 위의 엿가락처럼 늘어져 있다. 보다 못한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얼른 안 와! 너 정말 너무한다. 놀이동산 오자고 해서 왔고, 신나게 놀았으면 됐지. 안 산다고 약속해놓고 왜 그래? 이럴 거면 다음부터 놀이동산 오지 마!” 엄마는 아이 쪽으로 쿵쿵 걸어가서는 아이의 팔을 낚아채듯 세게 잡아끌었다. 아이는 삐쭉거리다 울음을 터뜨렸다. “나 이제 놀이동산 안 올 거야. 다시는 안 올 거야.” 엄마는 “뭘 잘했다고 울어? 너 엄마가 분명히 들었어. 다시는 안 온다고 했어!”라고 말했다.
어떤 여자가 있다. 이 여자는 이번 달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것 같아서, 더는 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친구와 백화점에 갔다가 너무 예쁜 샌들을 발견했다. 굉장히 편해 보였고, 가격도 저렴했다. 하지만 여자는 퍼뜩 ‘아, 안 되지. 더 쓰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여자는 퇴근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낮에 본 샌들 이야기를 했다. “여보, 나 그 샌들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 신으면 엄청 편할 것 같았거든. 그거 혹시 세일 안 할까? 세일하면 그때라도 가서 살까?” 했다. 남편은 여자를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당신이 애야? 이번 달 우리 집 사정 몰라? 안 되는 거 알면서 왜 자꾸 얘기해?”라고 말했다. 여자는 기분이 확 나빠져서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마음을 해결해주려고 한다. 가깝고 소중한 사람에게는 더하다. 갖고 싶은 장난감을 사지 못해서 속상한 아이의 마음, 마음에 들었던 샌들을 사지 못하고 와서 아쉬운 아내의 마음은 그냥 두면 된다. 마음은 해결해 줄 수도 없고, 해결해 줘서도 안 되는 것이다. 마음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그 마음의 주인뿐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해결이란 불편한 그 감정이 소화가 돼서 다시 정서의 안정감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주변에서 생각하는 마음의 해결은 그것이 아니다. 그냥 ‘끝’을 보는 것이다. 상대가 징징거리는 그 행동을 멈추고, 상대가 속상해하거나 아쉬워하는 그 말을 ‘그만’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내서 못하게 하거나 목청을 높여서 자꾸 설명한다. 비난도 하고 협박도 하고 애원도 한다.
왜 그렇게 상대의 마음을 해결해주려고 하는 걸까. 상대의 불편한 마음을 들으면 내 마음이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계속 그 모습을 보고 그 말을 들으면, 내 마음이 계속 불편해져서 견딜 수가 없으니, 상대가 그 마음을 표현하지 말게 하려는 것이다. 결국 내 마음이 편하고 싶은 것이다.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정서적인 억압이다. 내 마음이 편하고 싶어서 상대의 정서를 억압하는 것이다.
마음은 상대의 것도, 나의 것도 그냥 좀 두어야 한다. 흘러가는 것을 가만히 보아야 한다. 흘러가게 두어야 비로소 자신의 마음을 볼 수 있다. 상대도, 나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을 볼 수 있어야 감정이 소화도 되고 진정도 된다. 상대의 마음이 파악도 되고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도 조금은 알게 된다. ‘아, 지금 내가 불안하구나’ ‘아, 아이가 지금 기분이 좀 나쁘구나. 기다려 주어야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오은영 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