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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 흔드는 단풍철 ‘음주가무 버스’… 적발되자 “다리 저려 운동”

입력 | 2019-10-22 03:00:00

고속도로순찰대 두달간 집중단속




“다리가 아파서 그냥 잠시 일어나 운동을 한 건데….”

19일 오후 6시 40분경. 강원 홍천군의 중앙고속도로 부산 방향 한 갓길. 이곳에 정차한 관광버스 승객인 70대 할머니가 이렇게 말했다. 경찰이 주행 중이던 이 버스 승객들의 ‘음주가무’ 행위를 확인하고 버스를 갓길로 유도해 막 세운 참이었다. 이 할머니를 비롯해 음주가무 행위를 부인하던 승객들은 경찰이 “춤을 추는 모습이 카메라에 다 찍혔다”며 증거 동영상을 들이밀자 그제야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면서 승객들은 “죄송하다. 한 번만 봐 달라”고 말했다. 경찰이 촬영한 영상에는 고령의 승객 대여섯 명이 버스 통로에 선 채 앞뒤로 몸을 흔드는 모습이 담겼다.

경찰청 고속도로순찰대는 주행 중인 관광버스 내에서의 음주가무를 ‘고위험 행위’로 보고 가을 행락철을 맞아 이달 1일부터 암행순찰차 21대를 투입해 집중 단속을 벌이고 있다. 승객들의 음주가무를 방조한 채 차량을 모는 운전사는 처벌 대상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승객이 차 안에서 춤을 추는 등 안전운전에 현저히 장해가 될 정도의 소란 행위를 하도록 내버려두는 운전사에게는 범칙금 10만 원과 벌점 40점을 부과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단속에 적발된 차량 운전사는 경찰이 차량을 갓길로 유도하는 사이 승객들과 입을 맞춰 발뺌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단속 경찰은 “일부 운전사들은 ‘적발되면 범칙금을 내야 하니 노래를 부르려면 미리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19일 오후 경찰이 강원 홍천의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던 관광버스 안에서 승객들의 음주가무 행위를 적발해 단속하고 있다. 홍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 

본보 기자는 19일 고속도로순찰대 7지구대 암행순찰차를 타고 관광버스 내 음주가무 행위 단속 현장에 동행했는데 약 2시간 반 사이에 버스 3대가 적발됐다. 이날 오후 5시 35분경 홍천군의 중앙고속도로 부산 방향 남산터널 인근에서 관광버스 한 대가 경찰 단속에 적발됐다. 갓길에 정차한 버스에서는 운전사보다 60대 남자 스님이 먼저 내렸다. 이 스님은 경찰관 앞에서 “염불만 틀어놓은 건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단속 경찰이 버스에 오르자 뒤쪽에 앉아 있던 한 승객도 “물을 마시려고 잠시 일어섰던 것인데 왜 그러느냐”며 따지듯이 말했다.

경찰은 이번에도 증거 동영상을 제시했다. 경찰의 암행순찰차는 이 관광버스를 계속 따라붙다가 버스가 터널 내부로 진입했을 때 버스 왼편으로 바짝 붙어 버스 내부의 음주가무 행위를 촬영했다. 짙게 윈도틴팅(선팅)돼 있어 터널 밖에서는 잘 보이지 않던 버스 내부가 터널 안으로 들어서자 뚜렷이 보였다. 버스 통로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성과 노랫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승객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찍혔다. 이날 오후 6시 55분경 단속에 적발된 또 다른 관광버스 승객들은 처음엔 “우리 차를 왜 세우느냐”고 하다가 경찰이 영상을 보여주자 “초등학교 동창생들끼리 오랜만에 봐서 그랬다”며 위반 사실을 인정했다.

달리는 관광버스 안에서의 음주가무 행위는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달 15일 오후 7시경 서울양양고속도로의 양양톨게이트를 빠져나오던 관광버스에 타고 있던 50대 남성이 부상을 당했다. 이 남성은 통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는데 차량이 급정거를 하자 넘어지면서 머리와 목 등을 다쳤다. 고속도로순찰대 문숙호 경감은 “차량 안에서의 음주가무 행위는 가벼운 접촉 사고에도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고속도로순찰대는 관광버스 승객들의 음주가무 행위를 다음 달 31일까지 계속 단속한다.

홍천=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