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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文 “재정확장 필수”… 513조 슈퍼예산 ‘돈 풀기 남용’ 없어야

입력 | 2019-10-23 00:00:00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2020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재정의 과감한 역할’을 강조했다. “세계 경제가 빠르게 악화되는 상황에서 재정이 적극적 역할을 하여 대외충격의 파고를 막고 경제 활력을 살리는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다. 한국의 국가채무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0%를 넘지 않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10%에 비할 수 없이 낮은 수준이라서 재정 건전성도 튼튼하다고 밝혔다.

내년 예산안은 513조5000억 원으로 사상 처음 500조 원을 넘는 초슈퍼 예산이다. 국제통화기금(IMF)도 한국 독일 네덜란드에 재정 확대를 권했을 만큼 대내외 환경이 나쁠 때는 경기 활성화를 위해 재정을 확대할 필요도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재정 확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 게다가 예산 증가분의 47%는 1회성과 경직성이 강한 노동 보건 복지 분야다.

전직 경제 장관들과 전문가들로 구성된 ‘건전재정포럼’은 21일 “최근 3년간 재정지출 증가율이 명목 경제성장률의 2배를 크게 초과하는 매우 이례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등 3차례에 불과했다고 경고했다. 과거 경제위기로 인한 재정 악화는 경기가 회복되면 금방 해소됐지만 앞으로는 단기간 내 해소가 어렵다는 점도 걱정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초연금 아동수당 누리과정 문재인케어 등 복지를 크게 늘렸는데 이를 다시 줄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연설이 작금의 경제 현실을 제대로 반영한 것인지도 의문이다. 문 대통령은 우리 경제에 대해 “혁신의 힘이 살아나고 있다”면서 신규 벤처 투자가 사상 최대치고 신설 법인 수도 작년에 10만 개를 돌파했다고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벤처기업들은 주 52시간제의 급격한 도입과 규제로 사업하기 힘들다고 호소한다. 대통령은 “소득 여건이 개선되고 일자리가 회복세”라고 했지만 올해 경제성장률은 세계 금융위기 중이던 2009년 이후 최저치인 2.0%도 달성할까 말까인 데다 인구의 허리인 40대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

국회는 본격적인 예산안 심의에 돌입했다. 야당들은 1조 원이 넘는 남북협력기금 등을 ‘현미경 심사’ 하겠다고 밝혔는데 약속대로 정부 예산안 가운데 낭비적인 요소를 깐깐하게 걸러내야 한다. 정쟁에 몰두하다 막판에 졸속 심사와 쪽지 예산으로 세금을 낭비하는 구태를 반복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