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 옆에 특별 전시해 놓은 각자성석. 육동인 씨 제공
장승윤 사진부 차장
그 돌들을 ‘각자성석’이라고 하는데 한양도성 전 구간에 약 300개가 확인된다고 했다. 공사를 맡은 양인들은 그 돌들을 보면서 나랏일을 했다는 자부심과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을 것이다. 훗날 해당 구간에 하자가 생기면 다시 끌려와 보수공사를 하거나 곤장을 맞을 수도 있었을 테니까.
해설사는 “공사실명제로 인해 부실시공이 없었기에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같은 외적의 침략이나 태풍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와 무수한 세월을 거쳤어도 기본이 되는 아랫돌 부분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어서 성곽 복원의 토대가 되었습니다”라고 했다.
비단 내가 찍은 사진이 아니더라도 인터넷에서 이슈가 되는 사진에 줄줄이 붙어 있는 댓글을 보는 것도 사진기자의 일상 중 하나다.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사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과도하게 소비되는 연예인 사진을 보면서, 인지도와 관심을 먹고 사는 직업일지라도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댓글에 걱정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스스로 세상을 떠난 설리의 경우도 그랬다. 시민의 초상권에 대해서는 엄격한 우리 사회에서 연예인 사진은 본인이 원한 건지 아닌지에 대해 별다른 고려 없이 사람들 속으로 던져진다. 게다가 ‘설리 노출 사진’이라는 제목은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으기에 충분했다. 사진 밑에 달린 수백 수천 개의 댓글은 당사자 또는 당사자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몇 줄만 읽어도 숨이 막혔을 것이다.
설리의 자살에 대한 사건동향보고서를 외부에 유출한 소방관 두 명이 직위해제를 당했다. 하지만 악플러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 모두의 잘못이기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게 현실인 것 같다.
3주 후면 우리나라에서는 온 국민의 관심거리인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진다. 각 시도교육청이 지정한 수험장에는 예년처럼 사진기자와 TV 촬영기자들도 간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찍으면 안 된다. 수험생의 외모에 대해 달리는 인터넷 댓글로 인해 학생들이 심적 고통을 당할 수 있다는 교육당국의 우려 때문이다.
기자들은 최소한의 인원이 교육청이 지정한 특정 학교에서 공동 취재 방식으로, 그것도 교실 뒤편에서 조용히 촬영하는 방식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물론 얼굴 클로즈업 사진은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2007년 도입됐다 2012년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으로 폐지된 인터넷실명제를 다시 법제화하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하지만 공론의 장이 닫히면 결국 피해는 누가 보게 될까? 우리 사회는 자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나 궁금해진다. 다행히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가 우리 민족의 DNA 속에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걸, 낙산공원의 각자성석이 증명해주고 있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