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다시 기획 관련 부서의 팀장으로 가게 된 것이 30대 후반. 그동안 잘해 왔는데 새로운 분야에서도 잘못하면 안 된다는 과중한 압박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두 아이의 엄마 역할도 하면서 체력은 바닥나고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당시 그는 마치 시한폭탄이 몸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았고, 스스로 위험한 상황이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상담까지 받으며 스트레스를 조절하고, 한 달간 쉬면서 테니스와 여행으로 보충을 하려고 했으나 극복은 쉽지 않았다. 결국 시름시름 앓던 그는 회사를 그만둔다.
전업주부로 사는 것이 자신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후 서치펌(헤드헌팅 업체)에 재입사해 헤드헌터로 일하며 커리어 컨설팅과 전문면접관의 전문성을 쌓은 후 독립했다. 독립 첫해에 벌이는 시원치 않았지만 2년 차부터는 수입도 늘어나기 시작했고, 지금은 사업과 함께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으며 여성 리더십에 대한 논문을 준비 중이다. 그는 자신이 여성 팀장으로서 경험했던 실패를 자산으로 삼아 지금은 여성 리더를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둘째, 30대 중반이면 회사에서 승부를 걸고 싶은지 회사를 떠나서 자신만의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지 결정해야 하며, 이에 따라 커리어 비전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30대 중반이면 대략 10년을 일한 시점이고, 따라서 자신이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에 대해 나름의 판단을 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헤드헌터나 커리어 코치를 만나서 조언을 들어 보는 것도 좋다.
셋째, 일하다 보면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자신이 못한다는 생각이 들고 자신감도 떨어질 때가 있다. 이럴 때 주변에서 지지해 주고, 일과 삶에 대한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멘토가 필요하다. 유 대표의 경우는 남편이 가장 좋은 멘토라고.
그날 그의 이야기를 한 시간 넘게 들으면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회사 밖은 지옥이 아니다”라는 말이었다. 회사를 나와서도 얼마든지 살 수 있는 방법은 있으며, 다만 두 가지를 당부했다. 회사를 나와 불규칙한 수입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조직에 있을 때보다 소비를 줄일 수 있어야 하며, 조직에 있는 동안 나름의 경쟁력을 쌓아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서울의 3년 이하 퇴사자의 가게들: 하고 싶은 일 해서 행복하냐 묻는다면’이라는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은 평균 나이 36세, 회사 재직 기간 7년, 자기 가게를 오픈한 지 2년 내외가 되는 7명과의 인터뷰를 싣고 있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퇴사를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 경계하는 것이다. 대기업 퇴사 후 디저트 가게를 운영 중인 김희정 대표는 “구태여 용기라고 할 이유도 없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본인의 진심을 헤아릴 시간”을 충분히 갖도록 권한다. 이들 대부분이 퇴사 후 수년 동안 직장에서 벌던 것만큼 벌지 못했다고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나왔고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이들은 그 상태 자체를 행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유 대표 역시 1인 기업으로서 불안감이 없을 수 없지만, 하고 싶은 일을 만들어가는 현재 상태를 즐겁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 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