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사업의 꿈과 현실 정권 따라 개발 방향 오락가락… 구호만 요란했지 잘된 사업 없어 비슷한 때 착공한 中 푸둥과 대조… 작년 9월 뒤늦게 개발공사 출범 ‘스마트 수변도시’ 성공 미지수… 태양광발전소-국제공항도 논란 전기차 업체 참여 ‘상생형 일자리’… 군산-새만금 회생시킬지 관심
전북 군산 김제 부안에 걸쳐 만경강과 동진강의 하구에 건설되는 새만금. 33.9km인 방조제 길이를 따서 33센터라 불리는 전망대(왼쪽 타워 건물) 인근 상공에서 바라본 신시배수갑문을 통해 서해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하얀 우윳빛 포말이 이는 것은 해수 염도가 3.2%로 높기 때문이다. 드론 촬영(왼쪽 사진). 군산공단 현대중공업 조선소에 세워진 ‘말뫼의 눈물’의 주인공 골리앗 ‘코쿰스 크레인’. 새만금=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구자룡 논설위원
17일 찾아간 전북 군산시 새만금북로에 세워진 새만금 안내 입간판의 홍보 문구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 간척 사업, 세계 최장의 방조제(33.9km)’ 타이틀을 가진 만큼 꿈은 크지만 현실은 초라하다. 입간판 우측 끝에 소개된 입주 기업은 불과 7곳이고 그중 한국가스공사와 군산도시가스 등 2곳이 공기업이다. 올해 11월로 개발 시작 30년을 맞는 ‘아리울’(물 울타리라는 뜻의 새만금의 순 우리말 이름)’. 아직 매립도 안 된 수면이거나 허허벌판 갯벌로 남아있는 새만금은 대한민국이 이곳을 살릴 의지와 능력이 있는지 엄중히 묻고 있다.
○ 푸둥과 새만금의 다른 운명
새만금 간척지 개발의 대역사(大役事)가 급작스럽게 시작되다보니 1991년 첫 삽을 뜬 지 19년 만에야 방조제가 준공됐다. 시화호 오염 사태에 따른 대규모 물막이에 대한 거부감과 ‘삼보일배’로 상경 투쟁을 하는 등 환경단체 반발 등도 있었지만 대규모 간척지를 어디에 쓸지에 대한 비전도 없었다. 식량 안보를 위한다며 농지비율 100% 조성을 목표로 출발한 뒤 노무현 대통령 72%, 이명박 대통령 30%로 줄어들더니 박근혜 정부에서는 ‘농생명 용지’가 6가지 용도 지역 중 하나가 됐다. 개발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칠 방조제 해수 유통 문제도 이르면 내년 말 결정된다.
그동안 ‘한국의 두바이’(해양 개발 및 글로벌 허브), ‘한국판 라 그랑드 모트’(해양형 레저관광 도시), ‘제2의 라스베이거스’(카지노 및 컨벤션), ‘국내 유일 한중산업 협력단지’ 등 구호만 요란했지 어느 것 하나 진척이 없다.
중국 국무원이 불모지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신구 개발을 발표한 것은 1990년 4월로 새만금보다 5개월가량 늦었다. 상하이는 푸둥을 견인차로 금융과 첨단산업에서 홍콩과 싱가포르를 앞질렀다. 푸둥과 새만금 두 지역의 운명을 가른 것은 지리적 여건 등 요인이 많지만 비전과 추진력, 정치적 리더십의 영향도 크다. 두바이가 세계 항공의 허브가 되고, 월드컵 개최지가 된 것도 확고한 비전이 빚어낸 산물이다.
○ 놓친 ‘중국 찬스’
2014년 7월에는 한중 정상이 양국 전용 공단을 조성키로 합의했는데 새만금이 국내 유일의 한중 경제협력특구로 지정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3개 업체가 양해각서만 맺었다가 감감무소식이다. 중국 옌타이(煙臺), 옌청(鹽城), 후이저우(惠州) 등 중국 내 중한 산업단지에 한국 기업이 600개 이상 진출한 것과 대조를 이룬다. 최근에는 미중 무역전쟁이 계속되면서 미국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국 기업이 ‘한국산’으로 바꾸기 위해 새만금에 투자하려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하지만 실적이 전무하다. 중국 기업의 기술력이 높아지고 자국내 임금이 싼 것 등이 큰 요인이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새만금으로 중국 기업을 끌어들일 여건이 안 되어 있고 국내 다른 지자체에 비해 경쟁력 요소도 많지 않다.
진시황이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보낸 서복이 새만금 앞바다를 지나다 경치에 반해 선유도라는 이름을 붙였다거나, 고려 말 원나라와 합작해 개발한 화포를 이용해 왜구를 함께 무찌른 ‘진포대첩’이 군산 앞바다 진포라는 등의 오랜 인연을 강조하기도 하지만 투자 결정은 냉정했다.
○ 새만금과 군산의 상생
새만금북로 북측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에는 스웨덴 ‘말뫼의 눈물’을 상징하는 세계 최대(1650t)의 골리앗 ‘코쿰스 크레인’이 덩그러니 서있다. 2002년 1달러의 헐값으로 한국에 팔려 올 때 말뫼는 조선 산업의 쇠락에 눈물을 흘렸다. 이제 군산조선소가 2017년 7월 문을 닫은 뒤 이 골리앗도 갈 곳을 찾고 있다. 한 해 26만 대의 자동차를 생산하던 인근 군산국가공단의 한국GM 공장도 지난해 2월 가동을 중단했다.
그런 의미에서 24일 16개 전기차 관련 업체가 참가해 선포되는 ‘군산 상생형 일자리’는 군산과 새만금 두 지역 회생의 실마리를 제공할지 관심을 모은다. 특히 한국GM 군산공장을 인수한 자동차 부품업체 명신은 ‘중국의 테슬라’로 불리는 전기차 생산 전문업체 퓨처모빌리티의 ‘바이튼’ 브랜드 전기차를 주문 제작 생산할 계획이다.
○ 문 정부의 삼지창(三枝槍)
문재인 정부의 새만금 정책 3대 키워드는 공공 개발, 태양광 발전 그리고 새만금 국제공항. 새로운 돌파구를 열 것이라는 기대만큼 논란도 많다.
새만금 간척지는 2010년 방조제가 준공된 후 민간 자본이 방조제 안쪽의 필요한 용지를 매립해 개발하도록 했다. 하지만 불확실한 수익성으로 매립이 계획 대비 36%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지지부진하다. 전북연구원의 김재구 연구원은 “여의도 면적의 140배를 마치 신도시 개발하듯 민간 주도에 맡겨 오랜 세월을 허비했다”고 했다.
지난해 9월 새만금개발공사를 출범시킨 것은 그 때문이다. 공사는 ‘성공적인 선도 사업’으로 2024년 목표로 1조2000억 원가량을 들여 2만 명이 입주하는 ‘스마트 수변 도시’를 세울 계획이다. 하지만 누가 왜 와서 거주하는 도시가 될지는 확신이 없다.
새만금에는 세계 최대의 수상 태양광발전소 등 태양광 4곳과 풍력발전소가 들어설 계획이다. 신재생에너지는 ‘RE100(100% 재생에너지 사용)’ 기업인 구글이나 아마존 등의 데이터 센터를 유치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경관 훼손, 환경오염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1월 예비 타당성 조사를 면제받은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도 뜨거운 감자다. 예산 8000억 원을 들여 2028년 개항할 예정이지만 이용률이 극히 낮을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새만금 개발이 늦어 자체 수요가 없는 데다 주변으로 KTX와 고속도로가 잇따라 건설돼 제주도를 빼면 국내 여객 수요는 없다. 일본 중국 동남아 등 국제 여객은 약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무안공항과 나눠먹기를 해야 한다. 무안공항은 과거 비어있는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려 화제가 됐지만 지금도 활주로 이용률이 1.7%에 불과하다. 김제에 공항을 지으려다 접은 것이 불과 수년 전이다. 새만금 국제공항이 세금 잡아먹는 유휴 공항이 될 수 있다는 근거들이 널려 있다.
○ ‘판타지가 다큐가 되려면’
새만금 방조제 남단 한국농어촌공사 새만금홍보관 구내에는 방탄소년단(BTS) 포토존이 있다. 아시아 가수 최초로 정규 앨범 3집이 빌보드 차트 1위에 올랐는데 그 앨범 사진과 2016년 ‘SAVE ME’ 뮤직 비디오를 촬영한 곳이 새만금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한 것이다. BTS 촬영지에서는 2023년 169개국 5만여 명이 참가하는 25회 ‘세계스카우트잼버리’ 행사도 열릴 예정이어서 행사 안내 문구가 곳곳에 걸려 있다. 세계 최장 새만금 방조제 건립 공법과 건설 과정 및 국내외 간척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새만금 박물관’도 지어진다.
새만금 방조제 남단 홍보관 부지에 세워진 ‘방탄소년단(BTS) 포토존’. 뒤쪽 새만금 터에서 BTS 앨범 사진도 찍고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며 BTS의 명성을 빌려 인지도 높이기에 나서고 있다. 새만금=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김현숙 새만금개발청장은 2월 취임 직후 “판타지를 다큐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새만금의 인지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광활한 새만금에 무엇을 어떻게 채울지에 대한 전략이 더 시급하다. 30년간 7명의 대통령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길을 찾지 못한 채 두 곳 배수갑문을 통해 바닷물이나 넣었다 뺐다 하고 있는 ‘새만금 오디세이’를 끝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새만금=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