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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나꼼수’가 주름잡는 대한민국

입력 | 2019-10-23 14:38:00


신문·방송사에 견학 온 학생들을 가끔 만난다.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도 받는다. 한번은 한 남고생이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참고하느냐고 묻는데, 말문이 턱 막혔다.

다스뵈이다는 모르지만 형님 격인 나꼼수는 안다. 2011년 4월부터 2012년 대선 전날까지 팟캐스트로 방송되면서 새로운 미디어가 한국 정치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 보여준 혁명적 미디어콘텐츠였다.

● 2012년 선거 망친 ‘정치포르노’

인쇄기술이 종교개혁을 낳았듯 신종 미디어는 신종 혁명을 낳는다. 좌파의 정권교체를 위해 ‘가카(이명박 대통령) 헌정방송’을 내걸었던 나꼼수도 혁명을 낳을 뻔했다. 방송심의를 받지 않는다는 방어벽 뒤에서 입심 좋은 김어준을 필두로 사실과 주장 분간 없이 터뜨림으로써 정치와 농담(아님 말고), 정치와 IT(정보통신기술)연예오락예능프로를 뒤섞은 ‘정치포르노’로 대중을 열광시켰다.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를 진행했던 김어준과 주진우, 김용민(왼쪽부터) 동아일보DB



안타깝게도 정권교체에서 나꼼수는 자살골이었다. 2012년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지역구에 공천된 나꼼수 멤버 김용민이 “라이스 미 국무장관을 강간해 죽이자” 같은 막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문재인 당시 상임고문은 마냥 싸고돌아 대선 표까지 깎아먹었다. 뭣이 중한지 알아보는 판단력이 의심스럽다는 거였다.

그랬던 나꼼수가 지금은 대한민국을 주름잡는 주류로 벌떡 섰다. 정권교체 뒤인 2017년 11월 ‘가카 배웅방송’을 내걸고 인터넷방송을 개시한 다스뵈이다 역시 내게 질문한 남고생 등등을 사로잡고 있을 터이다. 문제는 나꼼수가 우리 정치를, 대한민국 전체를 나꼼수 수준으로 하향평준화시킨다는 데 있다.

● ‘방송의 나꼼수 현상’ 공정성 깨뜨려

김어준은 tbs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2016년 9월부터 진행했지만 주진우는 작년부터 MBC TV ‘탐사기획 스트레이트’를, 김용민은 작년부터 퇴근시간대에 KBS1라디오 ‘김용민의 라이브’를 진행한다. 정권교체와 함께 전리품 챙기듯 일제히 공영방송에 진출한 거다.

정권에 밉보인 방송인이 ‘블랙리스트’로 찍혀 방송을 떠나는 것이 위헌적이면, 정권에 잘 보였다고 ‘화이트리스트’에 올라 방송을 누비는 것 역시 유치한 일이다. 더구나 국민이 수신료를 내는 KBS,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tbs의 황금시간대를 나꼼수 출신이 장악했다는 건 선거공신들이 공공기관장 한자리 차지한 것과 차원을 달리한다. 군사정권 시절에도 창피했을 어용방송을, 대국민 선전선동이나 다름없는 세뇌작업을 대놓고 하는 모양새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9월 전체 아이템 75개 중 50개를 ‘조국 방탄’에 동원하는 식의 편파방송을 하고, 경영난 MBC가 편향성을 지닌 인물에게 사장 연봉과 맞먹는 출연료를 준다는 지적이 이번 국감에서 쏟아졌다. 김용민의 라이브 ‘청취자 청원’ 코너엔 ‘정권의 나팔수-적폐 중에 적폐’ ‘편파방송 그만하라’ 같은 항의가 수두룩하다.

방송법은 ‘방송 보도는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 방송을 감독해야 할 KBS사장, 서울시장은 문제의식은커녕 당당하다. 공영방송의 공정성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공정성을 박살내는 ‘방송의 나꼼수 현상’이다.

● 약자의 언어는 조롱…강자의 조롱은 폭력

작가 공지영은 2012년 서울 여의도 나꼼수 집회 무대에서 김어준에 대해 “저보다 가슴이 큰 B컵 좌파”라고 소개한 바 있다. B컵 좌파든 B급 좌파든, 나꼼수는 “쫄지마, 씨바”를 위악적으로 외치며 약자의 언어인 조롱으로 강자에게 빅엿을 먹인 B급 비주류 문화였다. 권력자를 제외한 만인에 카타르시스를 안겨준 공로, 인정한다.

작가 공지영. 동아일보DB



지금은 나꼼수가 주류이고 강자가 됐다. 강자가 약자에 대해 내뱉는 조롱은 폭력이고, 오만이다. B급 문화란 싼 티와 촌티로 주류문화에 대해 냉소와 조롱, 저항을 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지, 주류가 돼서도 똑같이 굴면 사회 전체를 B급으로 추락시키는 거다. 지금 우리나라가 이런 상태다.

사람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도덕성이나 인성, 자유민주주의적 가치, 사회적 윤리와 정의는 깡그리 무시한 채 우리 편은 무조건 옳다는 ‘내로남불’이 나꼼수를 통해 퍼져나갔다. ‘작전세력’ ‘합리적 의심’ ‘무학의 통찰’ 같은 말을 덧붙여 음모론을 퍼뜨리고는, 아니면 말고! 잘못돼도 책임지지 않는 무도(無道)의 정치도 여기서 확대재생산됐다.

● 이상한 사람은 나꼼수와 얽혀있다

현재 우리의 가치관을 혼돈스럽게 하는 사람들이 대개 나꼼수 사단과 얽혀있다는 것이 기이하지 않은가. 증거를 들이대도 기억나지 않는다는 ‘깻잎머리 나꼼수’ 조국이 대표적이다. 김용민은 2011년 6월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는 책에서 조국이 2017년 좌파진영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을 짚었다. 보은 차원인지 조국은 2012년 총선에서 막말 파문으로 낙선한 김용민의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의 1억 원 피부과 출입설을 나꼼수가 퍼뜨리지 않았다면 박원순은 지금 그 자리에 없었다. 김어준의 편파방송을 왜 감독하지 않느냐는 국감 질문에도 연간 300억 원이 넘는 서울시민의 세금을 퍼주는 그는 태연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쉴드를 쳐 듣는 이의 억장까지 무너뜨렸다.

2019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질의에 답하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동아일보DB



심지어 조국이 법무장관 때 천거해 검찰개혁추진지원단장을 맡은 황희석 법무부 인권국장도 나꼼수와 관련이 깊다. 조국 딸의 성적이 공개됐을 때 “유출한 검사의 상판대기를 날려버리겠다”고 말해 주변을 경악시켰다는 그는 민변 시절 나꼼수 김어준·주진우의 선거법위반 변호를 맡았다.

● ‘닥치고 정치’ 문재인은 ‘진지한 나꼼수’인가


압권은 문재인 대통령이 아닐 수 없다. 김어준은 2011년에 낸 책 ‘닥치고 정치’에서 “이념과 명분과 논리와 이익과 작전과 조직으로 무장한 정치인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보편준칙을, 담담하게, 자기 없이, 평생 지켜온 사람이 필요하다”며 “문재인이란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일찌감치 대통령깜 지지 선언을 했다.

요즘 문 대통령을 보면 ‘진지한 나꼼수’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은 공정을 요구하는데 대통령은 멀쩡하게 수사 잘하는 검찰 대신 검찰 잡는 공수처 설치를 주장했다. 한일 갈등의 해법으로 남북평화경제를 들고 나오는 식의 ‘자다가 봉창’도 기막히지만 내로남불의 예를 들면 한도 끝도 없다. 너무나 진지한 표정이어서 웃을 수도 없다는 점이 더 안타깝다.

2012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 시절 부산에서 야권 단일 후보에 대한 연설을 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청중 앞줄에 탁현민과 김어준, 주진우(왼쪽부터) 가 보인다. 동아일보DB



‘민주주의는 곧 쇠퇴하고, 탈진하고, 자살한다. 이제껏 자살하지 않은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밑에서 미국의 민주주의가 고생하지만 그럼에도 민주주의가 지켜진 저력은 제도 자체보다는 ‘문화’에 있다고 했다. 나꼼수의 문화혁명에 힘입어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이제 제도혁명까지 강행해 한 번도 경험 못한 나라로 끌고 갈 모양이다.

● 대한민국의 나꼼수化…행복한가?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해야 할 적(敵)이 아닌 경쟁자로 인정하기, 자기 세력만 옳다는 외고집에 빠지지 않기, 겸손과 절제 등이 민주주의를 지켜온 문화다. 이런 문화의 향상을 방해하는 세력의 출현을 경계해야 한다고 최근 나온 민주주의 교본 ‘민주주의는 만능인가’라는 책은 강조를 했다.

나꼼수가 이런 문화를 개 패듯 패버린 끝에 마침내 대한민국의 나꼼수화(化)는 완수됐다. 물론 우리 사회를 퇴보시킨 원인을 나꼼수 하나에 뒤집어씌울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가장 강력한 문화적 코드 중 하나가 나꼼수이고, 나꼼수와 함께 나꼼수가 키워낸 세력이 대한민국을 주름잡고 있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7년 전 우리 국민은 나꼼수의 반윤리적 막말에 냉철히 부표(否票)를 던졌다. 지금 박원순 시장은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청취율 1, 2위라며 박수를 친다. 주류세력의 교체, 좋다. 그럼 B급, 아니 B컵의 주류화가 완성된 지금, 대한민국은 좋은가. 낄낄.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