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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비인간 사이 ‘좀비 웹툰 전성시대’ 요즘 왜 뜰까?

입력 | 2019-10-23 18:06:00


네이버웹툰에 연재 중인 ‘좀비딸’에서 딸이 좀비에 물린 뒤 몸이 점차 좀비로 변하는 장면. 네이버웹툰 제공

“아빠, 나도 죽는 거야? 나도 좀비가 된 거야?”

딸이 좀비가 됐다. 믿기 힘들지만 딸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다. 좀비의 급작스런 출현으로 초토화될 뻔했던 대한민국은 사태를 빠르게 진정시키며 공식적으로 좀비가 없는 안전한 땅이 됐다. 돼지혈액으로 인한 감염, 임상실험 부작용 등 온갖 유언비어가 퍼졌지만, 확실한 건 이를 치료할 백신이 없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마지막 좀비가 살아 남아있었다. 그 좀비는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다. 좀비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삶을 이어간다. 최근 연재 중인 네이버웹툰 ‘좀비딸’은 한 아버지가 좀비인 딸을 죽이려는 이웃으로부터 지킨다는 설정으로 부성애와 혐오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좀비 소재의 웹툰이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좀비 웹툰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낳았다. 좀비, 뱀파이어 등의 소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여있다는 매력적 특징 때문에 고전소설,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소재로도 활용됐다. 동시에 일부 마니아층만 찾는 컬트적인 소재라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독자 접근성이 높은 웹툰 속으로 좀비가 파고들고 있다. 비교적 친숙한 그림체나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네이버웹툰, 다음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플랫폼을 비롯해 유료웹툰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좀비 소재 웹툰은 10여 편에 달한다. 최근 연재를 마치거나 별도 연재 중인 작품을 더하면 20여 편 이상이다. 작품 대다수가 조회수, 인기도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영화, 드라마로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다음웹툰에 연재 중인 이은재 작가의 웹툰 ‘1호선’. 독자에게 친숙한 지하철을 배경으로 좀비물을 만들어 현실감을 더했다. ‘1호선’은 좀비뿐 아니라 인간 군상의 씁쓸한 모습도 함께 표현했다. 다음웹툰 제공

연재 중인 좀비 웹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고립’이다. 현대인의 고립과 그로 인한 공포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네이버웹툰 ‘극야’는 남극 한·중·일 합동 연구기지로 파견을 간 한 안전요원이 좀비들과 맞닥뜨린다는 설정이다.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남극에 폭설, 강풍과 같은 극한 상황이 더해지며 외부와의 고립은 심화한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1호선’은 감기에 걸려 외부와 고립돼 있던 주인공이 좀비와 좀비처럼 약탈을 일삼는 인간들과 마주한다는 내용이다.

어둡고, 기괴한 좀비물과는 달리 친숙한 그림체나 현실적 소재로 좀비를 표현한 점은 최근 눈에 띄는 변화다. 다음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가벼운 ‘일상 웹툰’을 보듯 단순화한 그림체를 택했다. 70세 할머니가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려다 한 소녀와 만나 서로 의지하게 되고, 좀비가 가득해진 세상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좀비딸’은 가족애는 물론 개그코드도 넣어 좀비물에서 찾기 힘든 독자의 웃음을 뽑아낸다. 이윤창 작가는 “제 몸을 무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반려 고양이가 제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가 됐다. 이를 보며 아버지의 헌신적 사랑에 좀비물을 입힌 작품을 떠올렸다”고 했다.

좀비 웹툰의 인기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좀비로 재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웹툰 속 좀비로 재현되는 괴물의 양상’을 연구한 김은정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연구원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비인간’으로 규정되는 존재들이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차 곧 좀비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좀비물은 단순 유희를 넘어 사회의 고립, 혐오 같은 어두운 단면을 내포하고 있어 한동안 좀비물은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