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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정재락]‘울산국제영화제’ 공론화부터 해야

입력 | 2019-10-24 03:00:00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다음 달 6일부터 열리는 울산시의회 행정사무감사를 앞두고 지역 시민단체인 울산시민연대가 최근 기자회견을 열었다.

시민연대는 시의회가 시민들을 위해 꼭 지적해줬으면 하는 12개 과제를 발표했다. 이 중에는 ‘울산국제영화제’도 포함됐다. 울산시가 내년 8월 27일부터 9월 1일까지 열기로 한 영화제에 대해 “국제영화제도 이제 양적 성장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울산국제영화제에 대한 문제점은 그동안 숱하게 제기됐다. 먼저 중복 문제다. 울산에는 올해로 4회째를 맞는 울주세계산악영화제가 있다. 한국 유일의 국제산악영화제다. 울주군은 이
영화제를 이탈리아 트렌토영화제, 캐나다 밴프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산악영화제 중 하나로 육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로 등정해 세계 산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라인홀트 메스너 씨(75)는 2016년 10월 제1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참석해 “한국에도 산악영화제가 있어 너무 좋다. 건전한 산악문화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런 영화제를 두고 광역단체인 울산시가 영화제를 또 만들려는 것은 기초자치단체 주도의 기존 영화제에 ‘재를 뿌리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울주군이 내년부터 영화제를 4월로 옮기기로 했다지만 중복 우려는 해소되지 않는다. 게다가 울산에서 승용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부산 해
운대에서는 올해로 24회째인 세계적인 부산국제영화제가 매년 10월에 열린다.

다음은 기업체에 부담이다. 시는 영화제 예산을 당초 30억 원으로 책정했으나 중앙투자심사 등 까다로운 절차를 피하기 위해 최근 21억 원으로 축소했다. 시는 참여형 영화제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기업체에 티켓을 단체 구매하도록 하고, 영화제 수상작에 기업체 이름을 넣는 방법으로 5억∼6억 원을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조선업 장기 침체로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 기업체에 이중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울산국제영화제는 송철호 울산시장의 공약이다. 시가 영화제에 집착하는 이유다. 공약을 지키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현실성이나 실효성이 떨어지는 공약까지 반드시 지킬 필요는 없다.

공약 가운데는 후보자의 당선을 위해 선거캠프의 비전문가들이 급조한 것도 많다. 따라서 당선 후에는 공약의 옥석을 가려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다음 달 영화제 관련 예산이 편성되고, 내년 1월까지 영화제조직위원회와 집행위원회, 사무국 등이 설치되면 이 문제를 더 이상 되돌릴 수 없을지 모른다. 지금도 늦지 않은 만큼 여론 수렴 등 충분한 사회공론화 과정을 거친 뒤 영화제 개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순리가 아닐까.
 
정재락·부산경남취재본부 rak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