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사이인데 남편이 아닌 남자의 정자에서 비롯된 아이가 있는 경우는 세 가지가 있다. 다른 남자와의 사이에서 이미 아이를 낳은 여자와 결혼했거나, 부부 합의로 다른 남자의 정자를 공여받아 인공 수정했거나, 아내가 외도로 아이를 낳은 경우다. ‘타인의 정자’라는 점은 공통적이지만 태어난 아이의 ‘신분’은 다를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는 부부가 이혼하고 아내가 다른 남자와 다시 결혼해 호적에 입적시키면 부자 관계는 더 이상 성립하지 않게 된다. 갑론을박이 불가피한 것은 두 번째, 세 번째 경우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23일 그 두 경우 모두에 대해 남편의 친자로 봐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당사자인 A 씨(남)는 무정자증으로 첫째를 타인의 정자를 기증받아 인공 수정으로 낳았고, 둘째는 인공 수정 없이 자연 임신했다. 무정자증이 저절로 치유돼 아이가 생겼다고 여겼던 A 씨는 부부 사이가 틀어진 뒤 둘째가 부인의 외도로 생긴 아이임을 알게 됐다. 대법원이 첫째 아이에 대해 친생자로 판결한 것은 널리 인공수정 출산이 이뤄지는 시대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생물학적 관계가 없다 해도 인공 수정에 동의해 생명을 탄생시켰으므로 천륜처럼 끊을 수 없는 친자 관계라고 확인한 것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