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업의 적극적 역할을 당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되레 규제를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신호등으로 치면 파란불과 빨간불을 동시에 켰다는 평가다. 시장에 엇갈린 신호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CJ그룹은 2011년 자회사인 CJ제일제당과 KX홀딩스가 5 대 5의 비율로 대한통운에 공동 출자토록 했다. 대한통운 인수대금 1조9800억 원을 대려면 회사 하나로는 한계가 있어서였다. 그 결과 2개의 자회사가 공동으로 하나의 손자회사를 갖게 됐다. CJ의 대한통운 인수는 성공적인 인수합병(M&A)이자 투자 사례로 꼽힌다.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계열사들이 공동으로 신사업에 투자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데 이를 원천 차단했다는 것이다.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인수합병(M&A) 등의 사업구조 개편도 일정 부분 봉쇄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지배구조개편을 주문하며 지주회사체제 전환을 독려했다가 다시 막는 것 아니냐”고 했다.
공정위는 이번에 공정거래법 시행령을 고치면서 지주회사가 대규모 내부거래를 할 때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공시의무도 져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지금까지는 대기업이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할 수 있게 유도한다는 뜻에서 해당 의무가 없었다.
정부가 사사건건 기업에 개입할 수 있는 길을 터놓는 조치도 나오고 있다. 이날 한국경제연구원은 정부가 지난달 말 입법예고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법무부와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시행령 개정안은 사외이사의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임원(이사·감사) 후보자의 개인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또 해당 기업의 계열사에서 퇴직한 뒤 사외이사가 될 수 없는 기간이 2년에서 3년으로 확대된다.
한경연은 “금융회사에 적용되던 사외이사 결격기간 3년을 민간 기업에 적용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상장사들은 후보자 개인 신상정보 공개에 따른 책임, 미이행 시 공시 위반 처벌 부담이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사회 선진화를 위해 많은 자원을 쏟고 있는데도 공청회나 법 개정 없이 곧바로 시행령 개정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국회를 거치지 않고 주무를 수 있는 각종 시행령을 통해 규제를 양산하고 있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최근 나오는 신규 규제는 대부분 시행령 사안이다.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권리를 제한하는 건 법률로 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정부가 시행령 개정을 통해 손쉽게 규제를 양산하고 있으면서 기업 투자 환경 조성을 말하는 건 모순적”이라고 지적했다.
세종=김준일 jikim@donga.com / 서동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