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티톨로의 ‘등심구이와 채소샐러드’. 홍지윤 씨 제공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요리사 생활을 접고 잠시 쉬던 중에 체력을 키워두겠다고 매일 아침 6km씩 달리기에 열중하던 시절, 어느 날 지인들과 마신 몇 잔의 청주가 인생 최초로 달다고 느낀 것이다. 주변에서는 체력이 최상일 때 술맛도 최고라며, 분발해서 아마추어 하프마라톤을 나가보라는 권유가 이어졌다. 두 번째는 인생 최고 고난의 시기였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던 때 받아 마신 독주는 전혀 달지 않았지만 소주 석 잔에 나가떨어지는 주량이 무색하게 여러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기적’을 경험했다. 세 번째는 몇 년 전 스페인 여행에서다. 미식도시 산세바스티안 근교의 레스토랑에서 처음 맛본 스페인 와인에 빠져, 초반부터 와인을 들이켜다가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만취해 화장실에서 30분을 쓰러져 있다가 웨이터가 깨우는 바람에 간신히 정신을 수습했던 일이 있다. 상큼한 풀과 과실이 혼합된 듯 향기가 폭발하던 스페인 와인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수준의 역대급 창피함을 무릅쓰고 공개할 만한, 뇌가 추억하고 혀가 기억하는 와인이었다.
맛은 주관적 평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개인의 취향이 늘 개입되기 때문이다. 스페인에서 나를 혼돈에 빠뜨렸던 와인만큼 맛있는 와인을 찾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날의 와인이 나를 홀린 것은 맛있는 요리, 훌륭한 서비스, 식당의 분위기, 아름다운 자연이 조미료를 잔뜩 쳐줬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맛있는 요리는 최고의 조미료다.
홍지윤 쿠킹클래스 쉬포나드 운영자 chiffonade@naver.com
○ 브뤼서리 서교=서울 마포구 월드컵로 12길 10, 와인에 졸인 쇠고기 볼살찜과 매쉬감자 1만7500원
○ 있을 재=서울 강남구 언주로 168길 19, 감자뇨끼 2만9000원, 토종닭 구이 4만5000원
○ 티톨로=서울 강남구 선릉로 162길 27-3, 비프스테이크 3만6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