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 명의 스위스 취리히연방공대 학생들이 황창규 KT 회장(66)의 농담에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그가 “5G로 가능한 현실”이라며 기술적 부분을 설명하자 이내 모두 진지한 표정으로 변했다. 강당 앞에 설치된 화면에는 대형화재가 난 도심이 보였다. 무인비행선이 출동해 현장 일대를 스캔한 후 증강현실(AR) 안경을 착용한 구조대원에게 각종 정보를 제공했다. 5G를 활용한 원격진료로 부상당한 시민들을 신속히 치료하는 장면도 나왔다.
22일(현지 시간) 오전 11시 취리히연방공대(ETH Zurich) 본관 대강당. 황 회장은 이곳에서 ‘5G, 번영을 위한 혁신’을 주제로 강연했다. 취리히연방공대는 일반상대성이론을 발표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해 X레이를 발견한 빌헬름 뢴트겐등 21개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세계적 명문 학교다. 2014년부터 공대생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주기 위해 세계적 명사를 초빙해 특강을 해왔다. 황 회장의 이날 단독 강연은 아시아인으로는 최초였다.
강연 주제인 5G 역시 기술적 장점을 단순히 나열하기보다는 현대중공업 등 실제 산업현장에서의 B2B 적용, 인공 지능(AI)·자율주행차와의 연계, 감염병 환자 확산방지 활용 등 다양한 적용 사례를 동영상과 함께 설명해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제리 씨(20)는 “로봇공학같은 응용과학에 관심이 많다”며 “5G의 다양한 적용을 보여줘 큰 영감을 줬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황 회장에게 날카로운 질문도 쏟아냈다. 한 학생은 “5G전파의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자 황 회장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전자파의 유해성을 연구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KT는 지난 수년간 인체 및 환경에 미치는 영향 관련 연구를 지원해왔다”고 답했다. 또 다른 학생이 미국과 중국 간 화웨이 분쟁을 비롯한 각국의 치열한 5G경쟁에 대해 묻자 황 회장은 “경쟁을 통해 기술이 발전한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학생들끼리 ‘미스터5G’라는 그의 별명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황 회장은 국제적으로 ‘미스터 5G’란 별명을 얻게 됐다. 실제 올해 4월 한국에서 세계 최초로 5G가 상용화됐다. 현재 가입자가 400만에 달한다. 한국은 국가별 5G 표준필수특허 수에서도 1위(2019년 3월 기준)다.
황 회장은 내년 3월 KT 주주총회를 끝으로 회장에서 은퇴한다. 그는 삼성전자 재직시절부터 영국 케임브리지(2002년), 미국 스탠포드(2003년) MIT(2004년), 하버드(2016년) 등 세계 주요 명문대에서 강연을 해왔다. 이날 강연은 그가 KT 회장으로서 하는 마지막 공개 강연인 셈이다. 강연 후 황 회장은 “회장 임기가 끝나면 미래의 주역인 젊은이들이 제대로 역량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 필요하면 어디든 가서 청년들을 위해 무료로 강연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취리히=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