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문화부 차장
그럴 만했다. 고인은 무슨 사격표지판 같았다. 여성 아이돌답지 않다고, 좀 다르게 행동했다고. 온갖 해괴망측한 댓글이 쏟아졌다. 그가 받았을 내상은 감히 가늠조차 어렵다. 그러니 악플 비난은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이참에 제대로 대처하자는 목소리가 국내외에서 힘을 얻는다. 남미의 한 매체는 부고를 전하며 자극적이나 분명하게 짚었다. “얼마나 더 죽을 때까지 악플을 내버려둘 것인가.”
한데 착각이었다. 시궁창은 여전히 더러웠다. 악플은 유유히 흘러넘친다. 그의 연인이던 래퍼에겐 저주의 화살이 하늘을 뒤덮었다. 같은 걸그룹 동료에겐 ‘추모의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리지 않았다 힐난했다. 내내 빈소를 지켰단 게 알려진 뒤 잦아들긴 했지만. 친구를 잃고 가슴이 찢어진 이 앞에서조차 악플러들은 그들의 감정이 중요했다.
중요한 건 개인에게 내맡겨선 안 된다. 온갖 경로로 뚫고 오는데, 홀로 귀를 닫아도 한계가 있다. 악플러만 욕할 거 없다. 시스템이 만들어져야 한다. 먼저 자아비판부터. 어쭙잖게 언론사 녹을 먹고 있으니, 관련 없다 책임 회피할 생각 없다. 앞으로 댓글 가지고 기사화하는 것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겠다. 인터넷 반응을 방패 삼아 숨지 않겠다.
포털사이트에도 부탁드린다. 아마 댓글 자체를 없애는 건 어려울 터. 적어도 보고 싶은 사람만 로그인하고 보게 만들면 안 될까. 생채기는 막진 못해도 거기에 휩쓸리진 않게. SNS 업체도 마찬가지다. 자유로운 소통 공간이라지만. 언젠가부터 “생각을 독점하는 기업”(미 칼럼니스트 프랭클린 포어)으로 변질되고 있다. 편의라는 명분 아래 개인성(individuality)은 무시되고 의견은 일방향으로만 흘러간다. 악플은 그걸 자양분 삼아 배를 불린다.
이번 일 역시 공염불로 끝날지 모른다. 머지않아 또 다른 쓰라린 아픔을 목도할까 두렵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이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쳇바퀴에 갇힌 우리가 불쌍해서라도. 침묵한 다수는 그 악의에 동의하지 않기에. “익명은 결코 해방구가 돼선 안 된다. 악플은 강력 범죄다. 방조 역시 범법 행위로 인식해야 한다.”(2016년 영 정책연구센터)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