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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도와드릴게요” 일상어가 된 엉터리 우리말

입력 | 2019-10-25 03:00:00

“1만원이십니다” “앉으실게요”… 손님 공손히 대하려 어색한 존대
서비스업계 잘못된 표현 많이 써… 직원 “그런 말 안쓰면 오히려 어색”
전문가 “바른 말과 밝은 표정이 중요”




“총 1만 원이십니다.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23일 오후 서울 서초구의 한 커피전문점. 계산대 직원은 두 가지 메뉴를 주문한 직장인 조수진 씨(29·여)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 씨가 결제를 마치고 잠시 뒤 주문 메뉴가 완성되자 이번엔 다른 직원이 조 씨에게 이렇게 알렸다. “고객님, 주문하신 메뉴 두 개 준비해 드리겠습니다.”

두 직원이 조 씨에게 건넨 말은 어법상 틀리거나 어색한 표현들이다. “1만 원이십니다”는 “1만 원입니다”로 고쳐야 한다. 사람이 아닌 ‘1만 원’이라는 물건값을 높인 표현이기 때문이다. “결제는 어떻게 도와드릴까요?” 역시 “어떻게 결제하시겠어요?”라고 말하는 편이 더 낫다. 비용을 치르는 손님 입장에서는 ‘내가 결제를 하는데 직원이 무슨 도움을 준다는 것인지’ 하고 듣기에 따라서는 거슬릴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또 이미 준비돼 나와 있는 식음료를 “준비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보다는 “주문하신 메뉴 나와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하지만 조 씨는 어색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조 씨는 “직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게 익숙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다시 생각해 보니 표현이 조금 어색한 듯하다”고 말했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는 어법에 맞지 않거나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많다. ‘소개해 주다’를 ‘소개시켜 주다’로 말하는 것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표현들은 영어식 표현과 관련이 있다. ‘소개시켜 주다’ 또한 동사 ‘introduce(소개하다)’의 영어식 피동(被動) 표현에서 비롯했다. 이처럼 어색한 영어식 표현 대신 우리말 원형을 살려 말해야 뜻을 더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다.

어색한 우리말 표현은 서비스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특히 많다. 고객들에게 가능한 한 높임말을 쓰면서 거부감을 덜 주는 완곡한 표현을 찾다 보니 때로 잘못된 어법으로 말하게 되는 것이다. 서비스 업계에서도 이런 점을 알고 수년 전부터 ‘사물존칭 표현 사용하지 않기’ 등 캠페인을 벌여 왔다. 그 결과 ‘커피 나오셨습니다’와 같은 부자연스러운 표현이 많이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부자연스러운 표현들은 자주 쓰이고 있다.

6년째 커피전문점에서 일하고 있는 김다혜 씨(32·여)는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잘못된 표현이라는 것은 알지만 워낙 많이 쓰다 보니 쓰지 않으면 도리어 어색하다”며 “손님들도 이런 표현이 더 공손하다고 여기는 것 같아서 바꾸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경기 용인시에서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 A 씨는 “‘그 메뉴는 지금 안 되세요’와 같은 어색한 존댓말을 쓰지 않으면 ‘말투가 무례하다’며 시비를 거는 손님도 가끔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고객을 대할 때 가능한 한 존대의 표현을 쓰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어색한 우리말 표현을 쓰는 것은 삼가야 한다고 말한다. 국립국어원장을 지낸 민현식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손님을 존중하는 자세와 마음은 표정과 행동으로 충분히 표현할 수 있다”며 “우리말 어법에 어긋난 표현을 삼가야 한다는 공감대가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형성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은지 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