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PC방 의인 “흉기 든 범인에 몸이 먼저 나갔죠”

입력 | 2019-10-25 03:00:00

흉기 난동범 맨손 제압 정규철씨
“신고해 달라는 알바직원 비명에 흉기 뺏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어
반사적으로 달려가 범인과 몸싸움… 다시 그순간 돌아가도 같은 선택”
관악경찰서 ‘시민경찰’ 표창 수여




“어떻게든 흉기부터 먼저 빼앗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24일 오전 서울 관악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정규철 씨(27·사진)는 이틀 전의 급박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정 씨는 22일 오전 7시 반경 관악구 봉천동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 직원에게 흉기를 휘두르던 A 씨(39)를 제압해 피해를 막았다. 정 씨는 “(A 씨는) 185cm가 넘는 큰 키였지만 빨리 칼을 빼앗지 않으면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앞서 나도 모르게 몸이 먼저 튀어나갔다”고 말했다. 정 씨의 키는 170cm가 조금 넘는다.

“계산대 쪽에서 ‘신고해 주세요!’라는 다급한 목소리가 세 차례 들렸어요.” 계산대 쪽을 보니 PC방 직원 B 씨(23)가 흉기를 든 A 씨의 손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고 한다. A 씨는 약 7시간 반 전에 쿠폰 환불 문제로 B 씨와 말다툼을 벌였는데 B 씨가 자신을 경찰에 신고한 데 앙심을 품고 PC방에 다시 찾아온 것이다. 당시 PC방에는 정 씨를 포함해 손님 3명이 있었다.

“‘신고해 달라’는 소리가 들렸는데 나서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신고할 시간도 없겠다 싶어 칼부터 빼앗기로 한 거죠.” 정 씨는 계산대 쪽으로 뛰어가 흉기를 든 A 씨의 손목을 잡아 쥐었다. 이 과정에서 칼날과 손잡이가 분리됐는데 이를 몰랐던 A 씨는 손잡이만으로 B 씨를 찌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 씨가 경찰에 신고하려던 순간 A 씨는 옷 속에 숨기고 있던 다른 흉기를 꺼내들었다. 정 씨는 이번에도 A 씨와 몸싸움을 벌여 흉기를 빼앗았다. 다른 손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A 씨를 살인미수 혐의로 체포했다. 경찰은 24일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 씨는 “PC방 직원분이 나에게 ‘생명의 은인’이라며 몇 번이나 고맙다고 얘기했다”며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더라도 똑같은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관악경찰서는 정 씨에게 ‘우리 동네 시민경찰’ 표창을 수여할 예정이다. 경찰을 대신해 의로운 일을 실천한 시민영웅에게 주는 표창이다.

김재희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