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 첫날 박스오피스 1위 영화 ‘82년생 김지영’ 감독 ‘70년생 김도영’을 만나다 원작소설 읽은 뒤 한번도 이름 못 가졌던 엄마-고모 생각 나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은 결이 고운 영화로 소설이 재탄생한 데 대해 조남주 작가의 원작이 가진 이야기의 힘, 작품과 역할을 잘 이해하고 각자의 몫을 충분히 해낸 배우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원작 소설을 읽은 뒤 묘한 기분이 들었어요. 처음으로 한 발자국 떨어져 엄마와 저 자신,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풍경을 바라보는 느낌이었거든요. 그걸 절대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요.”
그는 소설이 사회적으로 불러일으킨 반향을 담으며 영화 장르로서 완결된 서사를 갖추기 위해 고심하고 또 고심했다.
배우 정유미의 연기는 ‘김지영’ 이야기가 갖는 보편성에 공감을 더했다는 평을 받는다.
개봉 전부터 촉발된 젠더 갈등을 무력화하듯 영화에는 어떤 악인도 등장하지 않는다.
“누구든 ‘빌런(악당)’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모든 인물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을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어요.”
이런 의도는 주연 배우 정유미와 공유뿐 아니라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역을 맡은 동명이인의 두 김미경, 귀한 외아들로 자란 남동생 역의 김성철 등 조연 배우들의 명품 연기 덕분에 개연성을 얻었다.
“영화를 보고 무언가 느끼면 그걸로 충분해요. 중요한 건 살아가면서 ‘나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작은 변화라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니까요.”
영화 속 지영은 마침내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시간을 매듭짓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연극무대와 결혼, 출산, 육아를 거쳐 47세에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으로 연출을 공부하고, 49세 때 첫 장편영화를 만든 김 감독의 삶과도 맞닿아 있다. 수족구병에 걸려 등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수업에 갔던 일, 아기 띠와 한몸이 돼 보낸 시절은 ‘82년생 김지영’뿐 아니라 ‘70년생 김도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시 사회로 나가길 머뭇거리는 ‘지영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었다. 그의 눈가가 붉어지더니 한참을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젊을 땐 누구나 산을 끝까지 올라가는 데 의미를 두지만, 나이가 든 지금은 원하는 방향으로 한 발이라도 내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소중한 건 우리 내면의 목소리니까요. 그런 것들을 경험하고, 깨친 뒤 이 영화를 만난 것이 참 다행이에요.”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