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널 마킹/마이클 콕스 지음·이성모 한만성 옮김/608쪽·2만5000원·한스미디어
게티이미지뱅크
월드컵 시즌이면 모두가 TV 앞에서 ‘입 축구’계 메시가 된다. 이 각도에서 접고 감아 찼어야 한다는 둥 패스가 아니라 슛을 쐈어야 한다는 둥 탄성이 빗발친다. 과거 한 선수가 질책에 못 이겨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든가”라는 말을 뱉어도 진짜 대신 필드로 나갈 순 없는 노릇.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 ‘입 축구’를 조금 더 고급지게 즐길 방법은 없을까.
‘조널 마킹(Zonal Marking)’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제목은 ‘지역 방어’라는 의미인 동시에, ESPN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운영하는 축구전술 사이트 이름이다. 책은 30년간 변화한 유럽축구 전술의 흐름을 짚었다.
저자는 1992년부터 2020년까지 28년을 4년 단위로 쪼갰고, 분기별로 7개 국가에 타이틀을 부여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순이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과 자국 리그 경쟁력을 고려해 7개국이 유럽축구를 주도했다”는 기준을 밝혔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네덜란드가 ‘토털 사커’를 바탕으로 1990년대 현대 유럽축구를 주도했고, 이탈리아는 수비 중심의 전술 논의를 심화시켰다. 프랑스는 특정 유형의 선수를 꾸준히 배출하며 유럽을 제패했고, 포르투갈은 까다로운 윙어들을 배출해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윽고 ‘티키타카’로 요약되는 스페인이 국제무대를 휩쓸었고, ‘게겐프레싱(전방압박)’과 재창조를 통해 거듭난 독일은 최강자가 됐다. 현 시기 타이틀을 거머쥔 잉글랜드는 타 국가의 다양한 전술을 수용하며 최고의 리그를 보유했다.
4년 단위 작위적 구분에 ‘그때 그 나라가 정말 최강자였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프랑스(2000∼2004년)의 경우 1998 월드컵, 유로 2000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2002, 2004년엔 쓴맛을 봤다. 저자는 “이민자로 구성된 다양한 선수단 색채, 천재성을 가진 ‘10번’ 플레이어, 이를 떠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당대 유럽축구를 주도한 흐름이라고 봤다.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전환기’라는 챕터를 넣어 한 국가의 주도권이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장면을 설명했다. 어느 학문이든 업계든 시간이 지나면 강자를 꺾는 신흥 강호가 등장하는 법. 저자의 구분법처럼 축구판 주기가 4년 단위로 유독 짧은 건, 그만큼 선수나 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필드 위에서 시시각각 반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