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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어린시절 내친구 개구쟁이 ‘니콜라’

입력 | 2019-10-26 03:00:00

[그때 그 베스트셀러]
◇꼬마 니콜라 1∼5권/르네 고시니 글·장자크 상페 그림·윤경 옮김/855쪽·3만3000원·문학동네




김소연 시인

‘꼬마 니콜라’는 소장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몇 번씩 거듭해서 읽었던 책이다. 내가 한 시절을 보냈던 공간들에서 손쉽게 나는 이 책과 재회하곤 했다. 교실의 학급문고에서, 카페의 창가에 마련된 자그마한 서가에서, 친구네 방에서….

언제고 가볍게 접근할 수 있었고, 읽다가 그만 읽어도 남는 갈증이 없었다. 무엇보다 무해한 듯했다. 독서에 대한 갈증과 의지 따위가 전혀 없을 때조차 손을 뻗어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까맣게 잊을 만해질 때마다 어딘가에서 마주쳤고 나는 편한 마음으로 펼쳐 읽었다.

1955년에 처음 연재된 작품이다. 벌써 60여 년 전이다. 한국에는 1982년 베스트셀러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화로도 제작됐고,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2000만 부 이상이 팔렸다고 한다.

나에게 ‘꼬마 니콜라’는 아직 어른이 되지 못한 시절에 만난, 좋아한 적도 미워한 적도 없는, 그저 가까이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친해진 친구 같은 책이었다. 스토리보다는 장자크 상페의 그림을 조금 더 좋아했다.

중학교 때 미술 선생님도 상페를 좋아했던 것 같다. 미술 수업 시간에 상페의 데생을 모방한 기억이 난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기 스케치북에다 코를 박고 상페의 그림을 따라 그렸다. 어쩌면 그림을 따라 그렸다기보다는 여백을 잘 남겨두는 것을 따라 했다.

한 교실의 모든 캐릭터의 크기를 축소하고, 칠판이나 창문 같은 것은 더 크게 그려 넣어야 상페스러운 데생이 완성됐다. 상페의 세계에 클로즈업은 없었다. 세밀한 묘사 또한 없었다. 상세함을 표백한 듯한 한 페이지에서 절묘한 원근감이 다가왔다. 모든 것을 멀찌감치 관망하는 기분. 그 거리감이 더더욱 이 이야기에 부담 없는 실소를 보태게 했다.

아슬아슬한 소동과 조마조마한 말썽이 모든 에피소드에 등장하지만, 이야기에 몰입된 채로 심장을 졸이며 아슬아슬해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그 시대의 청소년들에겐 어른과 아이의 갈등 앞에서 미리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관망할 수 있었던 첫 번째 텍스트였을지도 모르겠다.

어린이가 등장하는 이야기여도 페이소스(pathos)가 짙게 밴 작품들이 보편이던 시대였다. 눈물을 자아내는 스토리가 우세했을 뿐만 아니라 웃음을 주는 경우일지라도 페이소스는 기본이었다. ‘꼬마 니콜라’는 이런 점에서 신선했다. 교복을 입은 앙증맞은 아이들은 말썽을 자행한 가운데에서도 선생님과 부모님에게 할 말을 다 했다. 그 답변에서 구김살 없는 천진함을 엿봤다. 가정폭력이나 가난, 성차별이나 소외, 계급갈등 같은 것들이 드리운 그늘을 온몸에 담아내는 한국판 어린이물과 많이 달랐다.

주인공 니콜라는 그저 평범한 아이였다. 주변 인물들은 먹보, 싸움꾼, 낙제생, 부자, 잘난 척하는 아이였는데 한부모가족, 왕따, 가난한 아이, 장애인, 전학 온 아이 등은 등장하지 않았다. 여자아이도 주요 주변인물로 등장하지 않았다. 한 시대가 열광했던 이 어린이책에 무엇이 표백됐는지를 이번 기회에 처음 헤아려보게 됐다.
 
김소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