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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전문가 40명 수혈… 경직된 공직문화 걸림돌

입력 | 2019-10-26 03:00:00

정부, 헤드헌팅 도입 4년… 성과와 한계




박상운 조달청 물품관리과장(왼쪽에서 두 번째)이 직원들과 물품 목록 개선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있다. 박 과장은 회의에서 직원들의 토론을 장려하려고 화이트보드를 설치하고 사소한 의견이라도 적고 있다. 삼성SDS 컨설팅그룹장 출신인 박 과장은 정부 헤드헌팅을 통해 2017년 2월 공직사회에 들어왔다. 조달청 제공

2016년 9월 박상운 삼성SDS 컨설팅그룹장은 낯선 전화를 한 통 받았다. 인사혁신처 소속 공무원이라고 소개한 상대방은 조달청 물품관리과장으로 일해 볼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해졌어요. 정부가 내 역량을 인정하고 스카우트를 제의했다는 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는데…. 내가 정부에서 일을 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죠.”

장고에 들어갔다. 그는 LG전자를 시작으로 글로벌 컨설팅회사인 딜로이트, 우리은행, KPMG를 거쳤다. 주로 공급망관리(SCM)와 제품 혁신 컨설팅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조달청으로 옮기면 연봉은 당시 삼성SDS에서 받던 금액의 절반으로 줄어든다. 그는 세 자녀의 아빠다. 아내는 반대했다. 3개월 넘게 고민하다 그는 제안을 받아들였다.
 
○ “민간 전문가 모셔라” 정부 헤드헌팅 도입 4년
 
헤드헌팅은 기업의 최고경영자, 임원, 고급 기술인력 등을 소개해주는 전문 인력중개업이다. 2015년 삼성전자 인사팀장 출신 이근면 당시 인사혁신처장은 공무원 채용에도 헤드헌팅 방식을 도입했다. 역량을 갖춘 민간 인재가 스스로 공직의 문을 두드리길 기다리기보다 정부가 먼저 이들을 찾아내자는 취지에서다. 이에 앞서 정부는 2000년부터 민간 출신과 공무원을 모두 임용할 수 있는 개방형 직위를 만들고 외부 인력 수혈에 나섰다. 다만 개방형 직위에 전·현직 공무원의 채용 비율이 높아 도입 취지를 제대로 살리지 못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정부는 2015년 7월 민간인만을 뽑는 ‘경력개방형 직위’를 설치하고 헤드헌팅 제도도 추진했다.

2015년 11월 이동규 서울대 기상학과 교수를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에 앉힌 것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모두 40명이 정부 헤드헌팅을 통해 공직에 들어왔다. 가장 최근에는 지난달 특허법과 세법 분야에서 10여 년간 경력을 쌓은 이상욱 변호사(42)가 관세청 규제개혁법무담당관으로 임용됐다. 헤드헌팅 출신 40명 가운데 민간 기업 출신이 16명으로 가장 많다. 삼성 계열사 4명, LG 계열사가 3명이다. 변호사 출신도 7명이다. 관세청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등 법률 분쟁이 빈번한 정부 부처들이 변호사를 주로 영입했다. 대학교수에서 정부 헤드헌팅을 통해 공직에 들어온 사례는 5건이다. 금융회사와 컨설팅회사 출신은 3명씩이었다. 언론사에서 영입된 경우는 2명으로 이들은 부처 대변인, 홍보담당관 등으로 공보 업무를 담당했다.

○ ‘변화 바람’ 요구하나 ‘조직 적응’ 애를 먹기도

박상운 조달청 물품관리과장은 공직사회 특유의 경직된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박 과장은 “회의를 하면 해당 업무를 책임지는 사람 이외에는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놀랐다”고 말했다. 한 동료는 “원래 공무원은 회의는 많이 하지만 토론은 하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박 과장은 회의장에 화이트보드를 갖다 놓고 사소한 의견이라도 적으며 토론하라고 독려했다.

그는 “변화가 일어나는 데 반년이 걸렸다”고 말했다. 새로운 사업이 필요해도 실제 추진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박 과장은 “기업들은 상황에 맞게 긴급한 사업이 발생하면 돈과 인력을 집중한다. 정부는 급한 일이 생겨도 ‘일단 내년 예산에 반영시키고 나서’라는 말을 한다”고 말했다.

박 과장은 업무 비효율을 개선했다. 정부 기관들은 매년 초 물품 수요에 따른 구매 계획을 세워 상부에 보고한다. 2017년 박 과장이 임용됐을 당시 ‘개당 가격이 50만 원 이상인 물품’에 대한 수요 계획을 세워야 했다. 하지만 단가가 50만 원이 넘는 물품이 많지 않았다. 그는 최근 10년간 구매 데이터를 분석해 많이 쓰고 반복해 사용하는 물품 133개를 찾았고, 이 물품들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방식으로 지침을 바꿨다.

박석하 보건복지콜센터장도 초창기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다. 박 센터장은 보건복지부가 운영하는 129 상담 콜센터를 맡아 정보기술(IT)을 활용한 상담 업무 효율화를 추진했다. 하지만 간단한 인력 재배치, 하드웨어 개선 등을 요구해도 “일단 기다려 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는 업무 관계자들을 설득하며 콜센터 직원이 상담할 때 실시간 데이터를 입력하는 업무 개선을 추진해 상담 정보 활용도를 크게 높였다. 그의 처방은 인력, 기술을 크게 투입하지 않아 이런 업무 개선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 오랜 기간 저효율의 업무 방식으로 일했던 것일까. 박 센터장은 “이전 센터장들은 인사 발령을 받고 1, 2년 정도 근무하다 떠나는 일이 반복됐다. 임기가 짧아 변화를 추구할 동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직원들과 함께 실무를 처리하며 개선할 부분을 직접 찾았다는 것도 일반적인 공직자들과는 차별화되는 점이다.

○ “민간 출신 안착하도록 제도 개선해야”

정부 안팎에선 성과주의 확산을 위해 헤드헌팅을 더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다만 개선은 필요하다. 민간 출신이 조직에 안착하려면 제도 보완, 조직문화 개선 등이 필요하다. 이창원 한성대 행정학과 교수는 “‘늘공(늘 공무원)’은 임기가 정해진 ‘어공(어쩌다 공무원)’을 100% 신뢰하기 어렵고 반대로 어공은 조직에 헌신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헤드헌팅은 주로 전문성이 요구되는 직위에서 실시하는데, 이런 분야일수록 역설적으로 조직문화는 경직될 때가 많다. ‘정부 헤드헌팅 1호’로 다음 달 퇴임하는 이동규 기상청 수치모델링센터장은 “전문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며 일해 만족스러웠다”면서도 “경직된 조직문화에서 효율적인 성과를 내는 데 한계도 느꼈다”고 말했다.

임기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헤드헌팅 등으로 채워지는 개방형 직위는 최초 임기 3년에 1년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대 5년간 재직한 뒤 재심사를 받아 연임할 수 있지만 임기 제한은 민간 전문가들이 도전을 망설이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헤드헌팅 제도를 도입한 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은 “임기 제한을 없애고 다른 공무원들과 똑같이 경쟁하며 장차관까지 승진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승진을 위해 최소 근무기간을 채워야 하는 현 직급 정년제를 없애 공직에서도 기업처럼 적극적으로 경쟁하면 민간 인재들의 유입도 더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인사혁신처 담당관, 인재 발굴-설득 어떻게 하나▼

“나라 위해 당신능력 써달라” 감성무기 최대한 활용
국가DB-SNS 뒤져 후보군 물색… “연봉 적지만 경력에 도움” 덧붙여
일부 임용자 8개월 ‘삼고초려’도


정부 헤드헌팅은 인사혁신처 인재정보기획관실이 담당한다. 인재정보기획관실 정부 헤드헌터들은 각 부처에서 인재 발굴 요청이 들어오면 국가인재데이터베이스(국가인재DB)에 등록된 인물을 검색한다. 국가인재DB에는 올 6월 기준 17개 분야, 30만4625명이 등록돼 있다. 여기에는 사무관 이상 국가공무원은 자동 등록되고 각 분야 민간 전문가들은 동의를 거쳐 정보가 입력된다. 링크트인처럼 상시 채용이 이뤄지는 채용 플랫폼이나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샅샅이 뒤진다. 이렇게 1차 후보군을 50명 정도로 추린다. 1차 후보에서 정부기관이 요청했던 인재 요건, 영입 가능성 등을 따져 10명을 골라낸다. 10명에 대해 영입 희망 기관에서 부적격자로 분류한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후보에게 e메일 문자 전화 등으로 연락해 공직에 들어올 의향이 있는지 타진한다.

정부 헤드헌터들은 단칼에 거절하지 않으면 후보자를 직접 만난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이성과 감성을 모두 동원해 공직의 장점을 강조하며 설득해야 한다. 다만 민간 헤드헌터들처럼 파격적 대우를 약속할 수 없다. 헤드헌팅 출신 인재도 공무원 보수 규정에 따라 직급에 맞는 연봉만 받는다. 삼성SDS 출신 박상운 조달청 물품관리과장처럼 원래 받던 연봉보다 훨씬 적은 액수를 받게 될 때가 대부분이다. 정부 헤드헌터들은 “당신의 능력을 국가를 위해 써 달라”는 감성적인 무기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윤미경 인사처 인재기획담당관은 “대부분은 정부가 자신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사실에 좋아한다”면서도 “불안감, 연봉 감소 등으로 주저하는 사람도 많다. 이럴 때 ‘공직 경험은 당신의 경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는 말도 잊지 않고 전한다”고 말했다.

꼭 필요한 인재는 수개월간 설득한다. 2016년 초 문화재청은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 직위에 국제적인 감각을 갖춘 인물을 추천해 달라고 인재정보기획관실에 요청했다. 정부 헤드헌터들은 국가인재DB, 채용 플랫폼 등을 통해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퍼시픽아시아박물관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던 지연수 씨(50)를 찾아냈다. 지 씨는 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오랜 기간 큐레이터로 활약해 온 해당 분야 전문가다. 정부 헤드헌터들은 지 씨에게 전화를 걸고 e메일로도 수차례 연락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 정착한 지 씨는 가족을 남겨둔 채 한국에 들어와서 일하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8개월 이상 정부 헤드헌터들이 끈질기게 연락했다. 결국 지 씨도 마음의 문을 열었다. 그는 “힘든 결정이었지만 뭔가 새로운 걸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한국IBM 임원 출신의 윤지숙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과장도 “이윤을 추구하며 살았던 삶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며 2017년 7월 공직에 합류했다. 물론 정부 헤드헌터들의 제안을 끝내 거절하는 사례도 많다. 근무지를 세종시 등으로 옮겨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거절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공직에 관심이 있지만 당장은 때가 아니라며 사양하는 이들도 있다. 다만 공직 자체에 대해 반감을 보이는 사례는 거의 없다.

공직은 전문 역량도 필요하지만 조직 관리 역량도 갖춰야 한다. 정부 헤드헌터들은 인터뷰를 통해 관리자 능력을 파악한다. 직접 만나 보면 소통에 서툰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조윤정 사무관은 “성과를 지나치게 과장하는 사람은 최종 후보에서 배제한다”고 전했다. 대면 접촉과 설득을 통해 인재정보기획관실은 3∼5명의 영입 후보를 가려낸다. 정부 헤드헌터들의 역할은 여기에서 종료된다. 이후 후보자가 해당 직위에 임용되려면 중앙선발시험위원회의 평가를 통과해야 한다. 심사위원은 외부 인사로 구성된다. 위원회의 서류전형, 면접시험, 역량평가를 거쳐 1∼3순위로 매겨진 후보자들이 해당 정부기관에 최종 추천된다. 헤드헌팅팀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추천한 후보자가 임용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