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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바그다디, 개에 쫓기다 막다른 터널서 자폭… 자녀 3명도 숨져

입력 | 2019-10-28 03:00:00

트럼프 ‘IS 수괴 사망’ 공식발표




백악관 상황실서 작전 지켜보는 트럼프 26일 미국 워싱턴 백악관 상황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가운데)이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마크 밀리 합참의장, 마커스 에번스 합참 특별작전수행 부사령관(왼쪽부터)과 함께 이슬람국가(IS) 수괴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에 대한 공격 작전을 지켜보고 있다(큰 사진). 2011년 5월에도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작은 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 조 바이든 부통령,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등이 9·11테러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의 사살 작전을 지켜봤다. 사진 출처 백악관 공식 트위터

26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수괴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48)가 미군의 공격 과정에서 숨졌다. 2014년 6월 바그다디가 이슬람 원리주의 국가 건설을 발표한 후부터 5년 4개월간 이어진 미국의 IS 격퇴전도 마침표를 찍었다. 시리아 미군 철군에 대한 비판 및 탄핵 위기에 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도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 자살폭탄 조끼로 폭사


트럼프 대통령은 27일 기자회견을 열고 “바그다디 생포 혹은 사살은 행정부의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우선 순위였다. 미 특수부대가 위험하고도 과감한 야간 급습작전을 벌였고, 그를 쫓아가자 그는 죽음의 터널 끝에 이르러 자폭했다”고 설명했다. 바그다디를 ‘야만스러운 괴물’로 규정한 그는 “미국이 전 세계의 최고 테러리스트에게 정의를 가져다주었다. 어젯밤은 미국과 전 세계에 위대한 날”이라며 “그는 잔혹한 짐승이었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11년 5월 9·11테러의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 사살 사실을 발표하며 “정의가 구현됐다”는 표현을 썼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겁쟁이’ ‘개’ ‘괴물’ ‘짐승’ 등 시종일관 격정적 언어를 사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헬기 8대가 작전에 투입됐을 때 폭탄이 설치됐을 가능성에 대비해 정문을 피해 진입했다. 작전에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과정이 위험했기 때문에 작전이 모두 끝난 뒤 지금 발표한다”고 덧붙였다. 또 바그다디의 DNA 등 생물학적 증거를 통해 그의 사망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바그다디가 군견들에게 쫓겨 막다른 터널로 도망가다가 자살폭탄 조끼를 터뜨렸으며, 그의 자녀 14명 중 3명은 함께 폭사했고 11명은 안전하게 빼냈다고 밝혔다. 남편과 마찬가지로 폭탄조끼를 입었던 아내 둘은 조끼를 터뜨리지는 않았으나 사망했다는 점에서 사살 가능성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이번 작전을 수행하기 전 러시아 영공에 머물렀다. 러시아, 터키, 시리아, 이라크, 시리아 쿠르드족이 이번 작전에 도움을 준 것에 감사한다”고 밝혔다. 특히 시리아 쿠르드족은 미국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줬다고도 언급했다.

이날 CNN은 사전 녹화했던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과의 인터뷰도 공개했다. 에스퍼 장관은 “대통령이 지난주 작전을 승인했다. 가능하면 바그다디를 생포하되 생포가 어려우면 죽여도 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바그다디를 불러내 항복하라고 했지만 그가 거부했다. 바그다디가 지하로 들어갔고 그를 끌어내는 과정에서 그가 스스로 폭탄조끼를 터뜨렸다”고도 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번 작전에서 미군 2명이 경미한 부상을 입었지만 이미 군으로 복귀했다”고도 밝혔다.

IS는 바그다디의 사망으로 세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9·11테러의 주동자 오사마 빈라덴의 ‘알카에다’에서 IS로 극단 조직의 주도권이 넘어갔듯 그 뒤를 이을 ‘제2의 IS’ 출현 가능성도 없지 않다.

○ 트럼프, 정국 주도권 되찾기에 활용


트럼프 대통령의 2017년 1월 취임 후 첫 ‘중대 발표’가 하원의 탄핵 조사와 시리아 철군 결정의 후폭풍 속에서 이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내년 재선 승리를 위해 우크라이나에 정적(政敵)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조사를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 의혹을 뒷받침할 증언들이 속속 쌓이면서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자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백악관은 최근 탄핵 대응을 위한 정기 회의를 열기 시작했고 형사소송에 정통한 변호사들도 대거 법무팀에 투입했다. 대통령과의 견해차로 경질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의회 증언 여부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CNN은 대통령의 개인 변호사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이 최근 두 차례나 NBC 기자에게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를 헐뜯는 음성메시지를 남겼다고도 전했다.

하지만 궁지에 몰렸던 트럼프 대통령은 바그다디 사망을 통해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결정적인 승리를 챙긴 셈이다. 이번 바그다디 작전을 통해 통치력을 얼마나 회복할지, 이를 바탕으로 시리아 철군으로 입었던 상처에서 회복해 탄핵 조사에 정면 대응해 나갈지 주목된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카이로=이세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