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배영수(왼쪽)가 26일 키움과의 한국 시리즈 4차전 승리를 결정지은 뒤 환호하고 있다. 뉴스1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하지만 배영수는 마지막 아웃카운트 2개를 잡고 자신의 8번째 우승 반지를 손에 넣었다. 이날 공을 던지기까지 그는 팀 내 투수 13명 가운데 유일하게 출전 기회가 없었다. 그런 그가 등판 기회를 잡게 된 것은 여러 우연이 겹친 덕분이었다. 김태형 두산 감독은 10회 1사 후 투수 이용찬을 독려하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다. 투수 교체 의사가 없었으나 심판이 투수 교체를 해야 한다고 알려왔다. 투수 교체 없이 마운드에 방문할 수 있는 제한 횟수(2회)를 넘긴 것. 앞서 김 감독이 주심에게 확인을 요청했으나 주심도 착각했다. 배영수가 얼떨결에 등판한 배경이다.
갑작스러운 출격이었지만 배영수는 충분히 어깨를 푼 상태였다. 그는 9회말 두산이 1점을 내줘 9-9 동점이 되자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마운드에 선다는 보장이 없었음에도 해야 할 일을 했다. 마운드에 선 배영수가 이번 시즌 홈런왕인 키움 박병호를 맞아 시속 140km 직구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내자 김 감독은 승리를 확신했다. 배영수는 키움 샌즈를 투수 앞 땅볼로 유도한 끝에 혼신의 힘을 다한 공 5개로 승리를 지켰다. KS에만 25차례 등판해 최다 출전 기록을 가진 배영수는 역대 KS 최고령 세이브 기록도 새로 썼다.
배영수는 평소 까마득한 후배 함덕주(24)를 트레이닝 파트너로 정해 운동에 매달렸다. 떨어진 순발력과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 젊은 함덕주와 운동량을 맞추려 애썼다. 함덕주가 정신적으로 힘들어할 때마다 그를 다그치기도, 격려하기도 했다. 이병국 두산 트레이닝코치는 “30대 후반 선수가 20대 중반 선수와 운동량을 맞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베테랑 배영수와 운동하며 함덕주도 정신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우승 후 배영수는 “야구를 오랫동안 하니 이런 날도 있구나 싶다. 하늘이 도왔다”고 말했다. 마흔을 바라보며 20년째 마운드를 지키고 있는 배영수. 그는 언제 올지 모를 기회를 위해 한 시즌을 차곡차곡 준비했다. 마지막 순간 지어 보인 그의 미소가 환하기만 했다.
조응형 스포츠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