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더미 같은 과제 안고 ECB 총재직 올라 목표치 밑도는 인플레이션, 경기부양책 이견 "독일이 주요한 재정 부양책 시행토록 해야"
오는 11월 1일 크리스틴 라가르드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가 유럽중앙은행(ECB) 신임 총재로 취임한다.
ECB 총재는 유럽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하나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금리를 정하고 유로화의 공급을 통제하며 유럽 대형 은행을 감독한다.
유럽경제 전망이 암울한 가운데 라가르드는 산적한 과제를 안고 ECB를 이끌어야 한다.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은 1% 수준에서 맴돌아 목표치인 연간 2% 이내를 크게 하회하고 있다.
신규 부양책을 둘러싼 내분까지 발생했다.
ECB는 지난 9월 시중은행이 ECB에 돈을 맡길 때 적용되는 예금금리를 -0.5%로 내렸다. 기업이나 개인에게 돈을 대출해야 시중은행의 부담이 작아지는 셈이다. ECB가 예금금리를 내린 건 3년 6개월만이었다.
또 지난해 말 중단했던 양적완화(QE)를 오는 11월부터 매달 200억유로 규모로 재개하기로 했다. ECB는 채권을 사들여 시중에 돈을 푸는 조치인 QE를 2조6000억유로 규모로 진행했다가 지난해 말 중단한 바 있다. ECB가 채권을 매입하면 그만큼 시중에 돈이 풀린다.
라가르드는 일단 전임자 드라기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라가르드는 9월 유럽의회 청문회에서 드라기가 결정한 이같은 조치가 2013년 이후 유로존에서 1100만 개의 새 일자리가 생기는 데 큰 힘을 발휘했으며 금융 불안을 잠재웠다고 강조했다.
2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중앙은행의 탄약고가 바닥을 보이는 가운데 중앙은행을 향한 비판은 커지는 상황에서 세계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라가르드의 임기 8년 중 반인 4년 동안 IMF에서 수석 이코노미스트로 일했던 올리비에 블랑샤르는 “통화정책 탄약은 거의 바닥났지만 중앙은행이 너무 명시적으로 이렇게 말하면 시장이 소스라치게 놀랄 수 있다”며 “그래서 라가르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있다고 말하는 동시에, 재정정책 입안자를 포함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섬세하게 균형 잡힌 행동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은 마이너스 금리를 피한 덕에 아직 더 많은 대응 여력이 있다고 FT는 강조했다.
라가르드는 미국 CBS와의 인터뷰에서 “마이너스 금리 영역으로 얼마나 깊이, 멀리 들어가느냐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드라기의 요구는 무시됐고 이제 라가르드가 정치적으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스탠퍼드 대학 후버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 멜빈 크라우스는 “라가르드의 가장 큰 과제는 독일이 더 주요한 재정 부양책을 시행하도록 하는 것”이라며 “독일의 계속된 거절은 드라기가 유럽의 너무 낮은 인플레이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주된 이유였고, 라가르드도 비슷한 처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CB의 전 국제 정책 분석 책임자인 마르셀 프라츠셔는 “라가르드가 길에서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에게 예금자가 은행 예금으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더라도 ECB 정책이 어떤 이득을 가져다주는지 설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며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특히 독일에서 더 그렇다”고 밝혔다.
FT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라가르드가 핵심 정책에서는 드라기 정책과의 연속성을 유지하리라고 보고 있다. 하지만 최초의 여성 IMF 총재이자 ECB 총재가 될 라가르드는 드라기보다 더 따뜻하고 외향적인 성격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라가르드는 외교적인 기술과 합의를 이끌어내는 능력 면에서 기대를 받고 있다. 라가르드는 최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회의실 문을 잠그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FT는 전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