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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설계부터 인테리어·가구까지…대사관 건축으로 보는 외교

입력 | 2019-10-28 15:55:00


건축은 외교다. 대사관 건축엔 동서양 문화가 절묘하게 담겨 있다. 디자인과 설계, 나무와 돌, 인테리어와 가구까지…. 본국과 주재국 간의 팽팽한 긴장과 협력이 느껴진다. 그래서 대사관 건축 탐방은 무척 흥미롭다. 지난달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와 ‘오픈하우스서울 2019’가 평소 들어가 볼 수 없는 대사관을 탐방하는 특별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인터넷 신청이 1분 만에 마감될 정도로 인기였다.

●‘한옥의 재해석’ 프랑스, 스위스 대사관


서울 서대문구 합동에 있는 주한프랑스대사관은 김중업의 대표작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건축가 르코르뷔지에의 제자로 함께 일했던 1세대 건축가. 1962년 노출 콘크리트 기법으로 완공한 프랑스대사관의 핵심은 지붕이다. 김중업은 한국적 건축의 특징을 바로 지붕에서 찾았다. 대사관 업무동의 지붕은 날아갈 듯 가볍게 하늘로 치솟았다면, 대사관저 지붕은 웅장하게 내리누른 형상이다. 거대한 지붕이 단 4개의 기둥으로 떠받들어지고, 두 개의 건물을 부드러운 곡선의 가교가 이어준다. 중앙 정원을 두고 부채꼴처럼 둘러싼 건축물은 마치 노래하고 군무를 추는 듯 경쾌한 형상이다.


대사관저 외벽에는 김종학·윤명로 화가가 만든 모자이크가, 내부에는 앙리 마티스와 이응로 화백 등 양국 예술가들의 작품이 걸려 있다. 특히 다이닝룸 천장을 장식하고 있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눈길을 끈다. 필립 르포르 주한프랑스대사는 “식탁 위 대동여지도 장식은 프랑스식 테이블을 한국적인 영혼이 보호하고 있는 상징적인 모습”이라며 “대사관은 한국과 프랑스의 정신을 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스위스 정부는 서울 종로구 송월동에서 45년간 사용했던 낡은 건물을 허물고 2017년 새 대사관을 지었다. 주변에 고층아파트가 즐비하지만, 주한스위스대사관은 낮은 한옥 형태의 건물을 지었다. 원래 땅의 능선을 따라 3층이던 건물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돌아가면서 1층으로 점차 낮아진다. 스위스 건축회사는 설계 전 부석사, 소수서원 등 전통한옥을 답사했다고 한다. 목재 대들보와 기둥이 보이는 내부는 한옥 특유의 켜켜이 반복되는 공간감과 리듬감, 격자무늬 창으로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로 시시각각 변화하는 즐거움을 준다.

가장 인상 깊었던 공간은 대사 집무실에서 바라본 창 밖 풍경이었다. 돈의문 마을 뒤편 한양도성이 창문 가득히 눈에 들어왔다. 또한 중정에 설치된 빗물받이용 설치작품인 ‘워터커넥션’도 재미와 감동을 준다. 지붕에서 바닥까지 쇠사슬로 연결해 스위스에서 가져온 돌에 묶었고, 바닥에 파인 수로를 따라 흐르도록 했다. 스위스 예술가 레나 마리아 튀링의 작품으로 비가 올 때 빗물 떨어지는 소리와 모습에 취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조형물이다. 빗물은 지하탱크로 모아서 정수한 뒤 화장실과 난방에 활용한다. 또한 지열과 태양열을 이용해 대사관에서 쓰는 모든 냉방과 난방, 전기를 자급자족하는 친환경 건물이기도 하다.

●‘미스터 션샤인’이 근무했던 옛 미국 공사관


정동에 자리 잡은 미국 대사관저에 들어선 순간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떠올랐다. 미 공사대리 유진 초이(이병헌)가 근무하던 옛 공사관 별관 건물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옛 미국공사관은 1884년 서울에 세워진 최초의 외국 공사관 건물이었다. 드라마의 실제 촬영지는 충북 청주시 ‘운보의 집’이지만, 한옥과 나무가 어우러진 분위기는 무척 흡사한 느낌이었다.


옛 미국공사관 뒤쪽으로 가면 1974년 신축한 미 대사관저가 나온다. 당시 건물을 지은 필립 하비브 대사의 이름을 따 ‘하비브하우스’로 불린다. 건축가이자 민속학자인 조자용이 설계하고, 전통목조건축 대가인 신영훈과 인간문화재 이광규 대목장 등이 참여했다. 미국 오리건 주와 테네시 주에서 자라는 더글러스전나무로 서까래와 기둥을 만들었고, 전통 기와 장인이 만든 기와로 지붕을 만들었다. 잔디밭에는 해태 석상 중간에 작고 귀여운 고양이 석상이 눈길을 끈다. 해리스 대사 부부가 고양이를 좋아해 구해놓은 앙증맞은 석상이다. 대사관저의 리셉션 실에 있는 벽난로 굴뚝에는 ‘녕(寧·편안할 녕)’ 자가 새겨져 있다. 관저 안뜰 한가운데에는 경주 포석정 수로를 본뜬 연못도 있다. 미국 대사관의 직원은 “포석정 모양 수로에서 술잔을 한번 띄워놓아 보았더니 잘 흘러가지는 않았다. 물고기를 기르는 관상용 연못”이라고 귀띔했다.

●독특한 자국 문화를 살린 영국, 이집트 대사관

덕수궁 옆에 있는 영국대사관저는 1892년에 지어진 건물로 개화기 대사관 가운데 현재까지 원형 그대로 사용하는 유일한 외교공관이다. 빅토리아풍 빨간 벽돌 건물인 대사관저로 들어서면 1999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경북 안동을 방문했을 때의 사진과 기념품들이 전시돼있다. 신축한 건물 지하에는 주한외교관들의 사교공간인 영국식 펍 ‘브로턴 바’가 있다. 1797년 한반도에 도착한 첫 번째 영국인 선장 윌리엄 브로턴 대위를 기념하는 바다. 매주 금요일 밤 운영하는 회원제 술집으로, 닉 메타 부대사 등 대사관 직원들이 자원봉사로 바텐딩을 한다. 메타 부대사는 “한국에 있는 대사관 중 바가 있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다”며 “서울 최고의 진(gin)과 위스키 컬렉션을 갖춘 곳”이라고 자랑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있는 주한이집트대사관은 피라미드를 거꾸로 뒤집은 듯한 형태다. 이집트 대사관을 설계한 건축가 장윤규는 건축물을 ‘떠있는 돌(floating stone)’에서 은유했다고 한다. 돌은 바로 이집트문명을 다시 재발견하게 한 로제타스톤. 대사관 외벽에는 이집트 상형문자가 새겨져 있다. 건물 내부 1층 로비는 이집트 신전처럼 꾸며져 있다. 장윤규 건축가는 “돌이 자유롭게 떠 있다는 것은 신화적인 상상”이라며 “원래 계획은 건물 전체를 상형문자로 뒤덮어 돌이라는 물성(物性)을 제거하고 문자와 기호만을 남기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승훈 문화전문 기자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