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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조국을 너무 좋아했다”[오늘과 내일/정연욱]

입력 | 2019-10-29 03:00:00

조국 사태, 진보진영 내부갈등 촉발
성찰 없는 프레임 전환은 공허할 뿐




정연욱 논설위원

두 달 넘게 대한민국을 갈라놓은 조국 사태는 보수-진보 대결구도가 아니었다. 조국 일가를 둘러싼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범진보 진영의 내부 갈등으로 번졌다. 조국 사태가 상식의 문제냐를 놓고 갈등의 골은 갈수록 깊어졌다. 조국 사퇴는 시기만 문제였을 뿐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친문 지지자들의 거리 시위를 계기로 진영 대결로 몰아간 당청 지도부가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

여권은 결국 조국 퇴진을 검찰 개혁의 프레임과 맞교환했다. 개혁 과제는 조국 일가를 수사하는 검찰 권력의 힘을 빼야 한다는 목소리에 집중됐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라는 또 다른 개혁 과제는 빛이 바랬다. 한 친문 소설가가 “문프(문재인 대통령)가 적임자라 하니까 조국 지지”라고 충성 서약을 했듯이 친문 지지자들은 여권의 프레임 전환에 든든한 우군으로 나섰다. 조국 퇴진 국면에서 밀려서는 안 된다는 배수의 진을 친 느낌이다.

흔히 달을 보라는데 왜 달을 보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느냐고 항변한다. 하지만 정치적 소통 과정에선 달과 손가락을 같이 봐야 한다. 의제와 이슈 발신은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며 ‘어떤 사람이 하느냐’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인생 역정과 진정성이 국민들의 공감대를 얻어야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는 것이다. 조국은 국회에서 자신의 언행불일치를 지적받자 “성찰하겠다”며 적당히 넘어갔지만 정작 국민들은 그 지점에서 몰염치를 느끼며 불편해했다. 메신저의 이력에 흠집이 생길수록 그 메시지의 위력은 훼손되고 반감될 수밖에 없다. 보수-진보, 여야의 공수가 바뀐다고 해도 이 법칙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우리 사회, 특히 정치권에서 수신제가(修身齊家)의 도덕성과 주변 관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유다.

“대통령은 조국을 너무 좋아했다.”

조국 사태를 지켜본 친문 진영의 한 원로는 여권의 패착에 깔린 배경을 이런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9일 “본인이 책임져야 할 명백한 위법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며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했지만 이전 정부까지 갈 필요 없이 지금 정부에서 낙마한 인사청문 후보자들 중에서 과연 위법행위가 드러나서 사퇴한 경우가 있었나. 모두 국민 눈높이를 벗어난 의혹만으로도 물러났는데 왜 유독 조국에게만 그렇게 관대하고 너그러워야 하는지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뒤늦게 여당의 몇몇 초선들이 “그동안 괴로웠고 지옥 같았다”고 토로했듯이 국민들이 정권의 위선에 분노한 것은 이 같은 공정 가치의 왜곡 때문이었다. 이러니 법치(法治)가 아니라 인치(人治)라는 비판이 나올 만했다.

여권 지도부는 자신들의 정치적 선택이 국민들에게 거부당했는데도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라는 식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반성도, 성찰도 없이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혀질 것이라는 생각뿐인 듯하다. 아마 탄핵의 덫에 여전히 갇혀 있는 자유한국당은 크게 신경 쓸 필요 없으니 ‘포스트 조국’ 정국은 무난히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 같다. 이런 오만과 오기에 국민들의 상심(傷心)은 더 깊어갈 것이다.

국민들은 여권 지도부의 진솔한 반성과 새 출발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프레임을 바꾼다고 해서 조국 사태의 상흔은 말끔히 사라지지 않는다. 위기 국면에선 지지층이 결집할 것이다. 하지만 반성과 쇄신이 없으면 지지층 총량이 작아진다는 점을 잊어버리면 안 된다. 다음 달 9일이면 문재인 정권은 임기 반환점을 맞는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