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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못 믿는 시민단체[현장에서/김수연]

입력 | 2019-10-29 03:00:00


올해 5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기자회견. 뉴시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올 6월부터 9월까지 서울지역 자율형사립고(자사고) 22곳은 서울시교육청의 실태조사를 받았다. 올해 자사고 재지정 평가를 앞두고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 측이 ‘선행교육규제법(공교육정상화법)’을 위반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사걱세 측은 “자사고 9곳의 수학시험지를 분석해보니 선행교육규제법을 100% 위반했다”며 서울시교육청에 전수조사를 요구했다.

4개월에 걸친 조사 끝에 사걱세의 주장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본보 10월 23일자 A12면 참조). 서울시교육청이 지난해와 올해 1학기 22개 자사고에서 출제된 수학시험 114건을 모두 조사한 결과 법을 위반한 문항은 3개 학교에서 각각 1문항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론보도 후에도 사걱세는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시교육청의 조사를 전면 부정했다. 조사의 판단 기준과 내용이 명확하지 않고, 점검단의 규모나 해당 문항수를 비교할 때 부실점검이 의심된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사걱세와 교육청이 합동점검을 통해 양측의 이견을 확인하고 재판정한 뒤 결과를 발표하라”고 주장했다. 이어 서울시교육청은 이에 대해 11월 1일까지 답변해 달라고 했다.

서울시교육청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시험문제 분석을 담당했던 학력평가팀은 “전문가를 통해 절차대로 점검한 것”이라며 “해석이 다르다는 이유로 결과를 뒤집고 재조사를 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또 교육청 측은 “곧 치러질 대학수학능력시험(11월 14일)을 준비하는 데 집중해야 할 시기”라며 사걱세 주장을 일축했다.

사걱세는 사교육 유발요소 해소,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을 주장하는 진보성향의 교육시민단체다. 조희연 교육감도 자사고 재지정 등 주요 교육정책을 발표할 때 사걱세 측의 자료 내용을 자주 인용한다. 조 교육감이 추진 중인 일요 학원휴무제나 자사고 폐지에 대해 사걱세도 비슷한 입장을 표명해왔기 때문이다.

시민단체가 불법이나 탈법 의혹을 제기하는 건 당연하다. 그러나 교육청이 수개월간 자료를 분석하고 조사를 벌여 내린 결과를 부정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게다가 ‘합동 재판정’까지 요구하는 건 전례가 거의 없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극히 이례적인 요구”라면서도 “해당 부서에서도 다소 부담스러운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걱세가 교육에 대한 의견을 내는 건 자유에 속한다. 하지만 교육당국의 조사를 단체의 자체점검 결과와 다르다는 이유로 불신하면서 일선 학교의 규정 위반 여부를 판정할 권한까지 달라는 것은 지나친 것 같다. 이런 식이면 선행교육규제법 위반으로 적발된 학교들이 당국의 조사를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주체는 학생과 교사, 학교다. 시민단체의 입김에 따라 교육정책의 방향과 조사 결과가 휘둘려선 안 된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